적 지휘관인 헨리가 항복을 선언한 이후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 공격에 당한 왕국군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무릎을 꿇었으며, 간부들 또한 판을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체념하며 포로가 되기를 자처하였다.
“빨리 움직여! 이 염병할 쥐새끼들아!”
“본래라면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다! 너그러운 중대장님께 감사하도록 해라!”
승리한 전장의 군인들이 으레 그렇듯 윽박을 지르며 포로들을 대하고 있었다.
‘뭘 저렇게까지 험악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거지…….’
눈살을 찌푸린 다니엘이 한 마디 할까 싶어서 나서려는 찰나에 멕캘 중위가 다가온다.
“중대장님! 인원 파악 완료했습니다!”
“그래. 아군측 사상자는?”
“총 인원 207명 중 사상자 16명이 발생했습니다. 그 중 전사자는 4명에 나머지 12명은 경상에 불과합니다.”
대대급 인원을 제압했는데 전사자가 4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니.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의 교환비였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곤란하군…….”
작전 지원을 행하는 도중에 공훈을 올려버렸으니 확실히 곤란하였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도 참모 본부에서는 작전 지원 편제를 구성할 때마다 다니엘을 지휘관으로 삼을 테니까.
그건 다니엘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자조의 미소를 짓고 있던 것이었지만 멕캘 중위는 다르게 해석하였다.
‘이렇게나 훌륭한 공훈을 올려놓고도 만족스럽지 않으신 건가……!’
멕캘 중위로서는 차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위치한 사고방식이었다.
참모 본부의 에이스이자 제도의 영웅이란 명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게 실감된다.
멕캘 중위가 경외의 감정을 담아 바라보는 와중에 다니엘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전초 기지로 갈 준비를 하도록 하지. 전 병력에게 짧은 휴식 후 출발하겠다고 전해라.”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주변을 빙빙 돌다가 합류하고 싶었지만, 포로들을 잡은 이상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늦장을 부리는 도중에 포로들 중 한 명이 포승줄을 끊고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으니까.
최악의 경우 왕국군 측에서 보급대대 구출을 위한 기동대를 보낼 수도 있었으니 최대한 빨리 전초 기지에 합류해서 안전을 보장받는 편이 나았다.
“예! 중대장님의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외친 멕캘 중위가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떠난다.
덕분에 혼자 남은 다니엘은 망연히 시선을 돌렸다가 왕국군 병사들을 인솔하고 있는 프리엔을 발견하였다.
프리엔은 웃는 낯으로 조곤조곤 말을 내뱉고 있었는데, 왕국군 병사들은 두려움에 질린 채로 호흡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포로들한테 대체 무슨 폭언을 하고 있는 거지…….’
저러다 전시 국제법을 위반할까 싶어 걱정이었다.
어제 습격 작전을 구상할 때도 자신이 민간인처럼 옷을 입고 다가가면 더 속이기 쉬울 거라는 프리엔의 의견을 묵살한 바 있었다.
참고로 민간인처럼 위장한 채 적을 공격하는 행위는 명백한 전쟁 범죄였다.
그걸 설명했더니 ‘연합군과 손을 잡은 시점에서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인데 어째서 범죄에 해당하나요?’라는 소리를 진지하게 궁금하다는 얼굴로 하기에 소름이 끼쳤더랬다.
‘일단은 아군이라 다행이야.’
적군에 저런 민족주의 정신병자가 있다면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울 테니까.
프리엔에게서 시선을 돌린 다니엘은 이번에는 루시를 바라보았다.
루시는 참모 본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무적으로 포로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혹시 연합국의 동맹국인 왕국군을 공격한 것에 반감을 가지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루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전에 포로들 중 한 명이 반발하며 달려들자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치는 것으로 기절시키기까지 하였다.
태연한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왕국군의 멸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안심이었다.
‘당분간은 루시에게 총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연합국 측에서도 왕국은 버림패에 가까울 테니 굳이 무리해서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심 안도한 다니엘은 세상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저 너머의 산등성이에서부터 해가 천천히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침을 알리는 서광이었다.
*
해안 도시 노르디아 방면 전초 기지.
사단사령부 임시 작전 본부.
“이상합니다. 항공 정찰 결과 놈들의 물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지금쯤이면 물자가 말라가야 정상일 텐데…….”
본부의 작전 지휘소에 마련된 각탁에는 세 명의 연대장과 한 명의 여단장, 그리고 여러 대대장들과 참모들이 위치해 있었다.
사단사령부의 최고 책임자인 사단장이 전술 회의를 명목으로 이들을 불러모은 덕분이었다.
【제 7 마도 기갑사단 최고 책임자 / 사단장 펠데라함 소장】
근엄한 얼굴로 상석에 앉아 있는 펠데라함은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그러며 어째서 해안 도시 노르디아를 함락시키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골몰하였다.
‘북부 방면군의 북진은 수월하였다. 진군을 개시하고 보름이 되기도 전에 왕국의 영토 3할에 달하는 지역을 점령하였으니까.’
그야말로 쾌속 전진과 다름이 없었다.
이대로 왕국을 밀어버릴 수 있겠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제국군은 연달아 승전보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제국군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왕국군의 저항이 격렬해진 탓에 더 이상 전선을 위로 올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덕분에 고심하던 제국의 참모 본부에서는 해안 도시 노르디아를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노르디아를 함락시킨다면 해상으로의 이동이 용이해질 것이며, 그렇다면 양방향에서 왕국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작전의 요지였다.
훌륭한 계획이었다. 이견이 없었기에 펠데라함은 사단을 이끌고 노르디아를 포위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포위에 성공한 펠데라함은 노르디아로 향하는 왕국군의 보급 경로를 차단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포위당한 도시는 물자의 보급이 끊기는 순간 급격한 공포와 피로감에 시달린다.
군사와 민간인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 질서가 무너지며 전염병과 질병이 창궐하게 된다.
일이 잘만 풀린다면 적장의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승리를 따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해안 도시 노르디아에 주둔중인 왕국군의 철갑 사단의 보급에는 차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펠데라함은 의아하였다.
제공권을 장악한 것에 성공한 제국 공군의 도움을 받아 해상으로 이루어지는 적의 보급선도 벌써 몇 번이나 침몰시켰다.
지상은 자신의 기갑사단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개미 한 마리 통과할 틈 없이 말이다.
그런데도 왕국군의 철갑 사단은 보급을 제때 받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에 골머리를 앓던 펠데라함이 여단장 하인리히를 돌아보았다.
“이보게. 하인리히. 자네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이라도 가는가?”
안타깝게도 하인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저로서도 어떤 방식으로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군요. 하지만 본부에서 도움을 줄 참모를 보냈다고 하니 한 번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움을 줄 참모? 하. 설마 그 다니엘 슈타이너를 말하는 건가.”
북부 방면군에서 수 년을 보낸 펠데라함 또한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제도에서 그 난리를 피웠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펠데라함은 다니엘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고작 반 년만에 수많은 공적을 쌓은 것이 미덥지 않았던 탓이다.
‘보나 마나 제도에서 선전용 영웅을 만든 것이겠지.’
징집율을 높이기 위해 제도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영웅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몇몇 사건들은 본인이 직접 한 게 맞겠지만, 상식적으로 다니엘의 모든 행보가 조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웠다.
보다 많은 군인을 확보하겠다는 본부의 생각이야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할 정도로 공훈을 몰아주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
지금 사령부에 필요한 것은 말만 유창한 참모 나부랭이가 아니라 실적을 가져오는 유능한 전사였다.
‘본부에서 작전 지원으로 보내준다는 게 고작 애송이 참모 하나라니.’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던 펠데라함이 한숨을 내쉬려던 순간이었다.
“사, 사단장님?”
곁에서 무전 대기를 하던 병사의 말이었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병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대위가 이끄는 중대가 이곳에 도착했답니다. 그런데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상자 16명 중 4명이 사망하고 12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하? 겨우 행군에 불과한 과정에서 사상자를 16명이나 내고 그중 4명이 사망했다고?
급속 행군을 했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될 지경인데, 기존 도착일로부터 6일이나 지났을 정도로 늦장을 부려놓고 사상자를 16명이나 냈다?
‘형편없는 지휘관이군……!’
전장에 투입하면 절대 안 될 부류였다.
다니엘이 도착하면 적당히 책임을 묻고 후방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킨 무전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이끄는 중대가 사단사령부에 합류하는 경로에서 적 보급대대를 찾아 제압하였다고 합니다. 보급대대 인원 총 327명 중 135명을 사살하였고 적 대대장을 포함한 192명을 포로로 붙잡았다는 보고입니다…….”
여러 의견이 오가던 작전 본부에 침묵이 감돈다.
‘……뭐라고?’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뛰어난 전과에, 펠데라함은 물론이고 작전 본부에 모인 장교들 모두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