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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 - Chapter 40

점령지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다니 꿈만 같았다.

어떤 꿈인지 세부적으로 분류하자면 악몽에 가깝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악몽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이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님.”

집무실 내부에서 루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아시겠지만 참모 본부에서 소령님께 임시 주둔지 사령관 자리를 일임하였습니다. 사단장님은 부대를 이끌고 도시를 떠나고 있으니 이제 소령님께서 도시를 관리하셔야 할 겁니다.”

안다. 지금 집무실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기갑사단의 전차와 야포들이 병사들과 함께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내게 소령 배지를 달아준 하인리히 또한 자신의 여단을 이끌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북부 최전선으로 합류한다는 날이 오늘이었을 줄이야.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떠나는 당일에 주둔지 사령관 자리를 넘겨주다니요!’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소리쳐봤자 하인리히에게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단에서 내게 남겨준 병력은 얼마나 되지?”

“대대급 병력입니다. 총 병력 수는 950명에 달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사단에서 최대 편제에 가까운 대대 병력을 남기고 갔다는 것이다.

노르디아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니 이 정도 병력이면 치안 유지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전공을 너무 많이 올렸어.’

단기간에 올린 전공의 여파로 소령으로 특진을 해버리고 말았다.

위관급 장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해진 영관급 장교가 되었다는 소리다.

이 소식은 얼마 안 가 연합국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럼 나는 ‘제국군 지도부 핵심 인원’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전범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란 소리였다.

‘그렇다면 제국이 승리하는 쪽에 판돈을 걸어야 하나?’

아니. 그건 승산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일대일 총력전을 벌인다면 제국을 이길 수 있는 국가는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란 링 위에서 심판을 두고 싸우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연합국이 왕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렇다.

중립을 지키지 않은 왕국에게 분노한 제국은 지금 철퇴를 휘두르고 있지만, 그 철퇴에 맞은 왕국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열강들은 생각한다. 이대로 제국이 패권국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앞다투어 연합국에 힘을 보태주기 시작할 것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남부의 소치알리스 공화국과 동북면에 위치한 벨레카 연방국이다.

그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순간 세계 대전이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제국은 졸지에 바다를 제외한 삼면에서 공화국, 연방국, 연합국을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 전황에서 제국의 승리를 점치는 것은 역배에 인생을 건 도박꾼 마인드나 마찬가지다.

‘판돈은 내 목숨이다. 그러니 신중해야지…….’

일이 여러모로 꼬이기는 했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제국이 장차 찾아올 불리한 전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온갖 행운을 겪는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어떻게든 제국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름값이 올라간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망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받아줄지도 의문이고 받아준다고 해도 신변을 보장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합국 측에서도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거래를 제안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소령님?”

머릿속으로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던 내가 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루시가 붉은 눈을 가만히 깜빡이며 나를 바라본다.

루시가 연합국의 스파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소령으로 진급했으니 암살 확률이 높아졌을 것 같은데.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루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에 골몰하시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이제 슬슬 도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아. 그렇지.”

헛기침을 내뱉은 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뒷짐을 지며 말했다.

“도시 계획이라고 해봐야 치안 관리가 중점 아닌가? 범죄가 일어나는 주요 거리들을 중점으로 순찰을 강화하면 될 거다. 행정은 기존 관습대로…….”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루시가 굳이 도시 계획을 강조해서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행정이 마비됐나?”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다수 공무원들이 어선을 통해 탈출한 것은 물론이고 시장과 같은 고위 공무원들 또한 모두 전쟁을 피해 망명했습니다.”

“행정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된다는 소리군.”

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부터 복구하는 게 중요하다. 군 물자를 풀어 식량 배급을 행하고 남아 있는 의사들을 복귀시켜 의료 서비스를 활성화시켜라. 치안 유지는 주둔군과 현지 경찰이 협력하여 진행한다. 또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말고 멈칫하였다.

참모 본부에서 명령한 ‘임시 주둔지 사령관’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되면 앞으로도 계속 전선에서 이런 일을 도맡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도에서도 암살 위협을 감내해야 하는데 먼 타지에서 작전 수행?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최대한 고과를 낮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옳았다.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잘못된 방향으로 도시 행정을 부활시키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고, 시민들의 불만이 시위나 폭동으로 이어진다면 나의 무능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다면 본부에서는 내가 주둔지 사령관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나를 대체할 주둔지 사령관을 임명하여 이곳에 보낼 테니 내가 제도로 복귀할 시간도 단축되겠지.

고과도 낮추고 복귀도 빠르게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좋아.’

생각을 마친 내가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이들을 선발하여 군역을 부여해라. 대대급 병력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다. 주둔군을 도와서 잡일을 도맡아 하라고 명한다면 이해할 것이다.”

적의 주둔군을 도와서 군역을 해야 된다? 불만이 폭발할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부역을 하는 인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불만을 공유하겠지.

“또한 도시의 세율을 새롭게 측정해야 할 텐데. 기존 세율이 어떻게 되지?”

“알 수 없습니다. 패배를 상정하고 있었는지 공무원들이 망명하는 도중에 관련 서류들을 모두 불태우고 도망쳤습니다. 허나 설문조사를 행한다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잘 됐다.

내 마음대로 세금을 거두면 될 일이었으니까.

“지금부터 노르디아의 시민들에게 전쟁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소득세를 30% 부과한다. 고위 소득자인 경우 최대 50%까지 부과하도록 해라.”

현재 제국의 노동자 기본 소득세는 22%다.

전쟁중인걸 감안하면 적은 편이지만 본래 12%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오른 편이다.

당연히 제도 내에서도 세율이 높아진 것에 조금씩이나마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제국과 명확히 차별을 둬가며 기본 소득세를 30%로 책정한다? 당연히 불만이 폭주할 것이다.

“더해 부족한 행정 인원들을 충당하기 위해 실력 있는 자를 뽑는 모집 공고를 걸어라. 단, 왕국의 기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국의 기준으로 뽑는다.”

공무원 선발 절차에서 왕국의 기존 관례를 제거한다.

일종의 문화 억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또한 왕국민의 불만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내 말을 모두 들은 루시가 가볍게 경례를 올렸다.

“말씀하신 사항을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례를 받아준 내가 몸을 돌려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마도 기갑사단이 도시를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리에 나와 그 광경을 미증유의 감정을 담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왕국민 여러분. 앞으로 살기가 조금 더 고달파질겁니다.’

하지만 악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살고자 해서 벌인 일이니까.

*

늦은 밤.

술집 지하, 비밀결사 흑조 평의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노르디아는 제국놈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네.”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의 말에 모두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피부를 가진 흑조의 지도자 함탈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날이 벌써 십 년이 되가네.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도시를 잃는 아픔은 모두가 처음일거라 생각함세.”

함탈이 테이블을 힘주어 쿵 두드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네! 저 잔악한 다니엘 슈타이너를 제거한다면 도시를 되찾을지도 모른다! 안 그런가!”

옳소! 함탈의 목소리에 곳곳에서 동의한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그들의 결의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함탈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비밀결사 흑조의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는 젊은이 타르키였다.

손에는 문서 다발을 들고 있었다.

“결사대 여러분! 주둔군 측에서 오늘 도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놈이 결국……! 어디 한 번 말해보게.”

주둔지 사령관이 도시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것은 약속된 일이었다.

곳곳에서 침음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타르키가 손에 쥔 문서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일단 무직자에 한해 군역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우리들 보고 제국을 위해 일하라고! 어처구니가 없군!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어…… 반응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봉급을 제대로 지급한다는데, 제국 기준이라 환율을 따지면 노동자 평균 임금의 두 배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지원자가 수두룩하게 생길 정도입니다.”

돈을 제대로 지급한다고?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좌중이 침묵하는 사이 타르키가 말을 이었다.

“다음은 세율입니다.”

“하! 세율! 안 나올 리가 없지. 그 쓰레기들이 세율을 얼마나 높인다던가?”

“그게…… 기본 소득세 30%에 고위 소득자에 한해 소득세를 50%까지 걷겠다고 합니다. 세율을 오히려 낮췄습니다.”

덕분에 결사대원들은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기존 세율은 기본 소득세가 45%에 고위 소득자는 최대 70%까지 부과했었다.

전쟁 때문에 더 올라갈 거란 조짐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시민들은 죽어나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주둔지 사령관인 다니엘 슈타이너가 그 세율을 감소시켜 준 것이다.

결사대원들이 무어라 말을 못 하고 있는 사이 타르키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공무원 선발에 관해서인데, 왕국이 아닌 제국 기준으로 뽑겠답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제국에 충성할 인재들만 뽑겠다는 건가!?”

“으음. 그게 아니라 왕국 공무원 선발 기준에 있는 쓸데없는 가산점들을 모두 없앴답니다. 대표적으로 귀족 출신에게 주는 가산점 같은 걸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능력만으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모든 말을 다 들은 결사대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본래 지금은 혁명의 불씨가 불타올라야 할 시기인데,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유지되던 침묵 속에서 로브를 푹 눌러쓰고 있던 남자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손을 꼼지락거리던 남자가 함탈을 돌아보았다.

“……이전보다 더 살기 좋아진 게 아닌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남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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