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참모 본부로 출근한 다니엘은 임무 보고를 위해 작전 참모실에 들렀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전참모님!”
“다니엘 슈타이너 중령님! 생환을 축하드립니다!”
“회담 결과 들었습니다! 역시 다니엘 중령님이십니다!”
다니엘을 발견한 참모 인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는 박수와 함께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그 이질적인 칭찬 세례에는 진심보다는 아첨의 함량이 높아보였다.
‘마치 미래의 권력자에게 줄을 서는 것 같은 느낌인데…….’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전쟁 영웅이 생존한 것에 모자라 벨라노스 내각총리대신과의 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거기에 복귀하자마자 황제 폐하와 독대를 했다고? 권력의 이양기에 들어선 현 제국의 떠오르는 신성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정작 다니엘은 황제와의 독대에서 죽다 살아난 입장이지만, 그걸 입밖으로 낼 수는 없는 입장이라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안부차 인사를 주고받고 있으니 작전참모부장실의 문이 열린다.
부장실에서 나온 에른스트는 다니엘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이름을 부른 에른스트가 다니엘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다.
“복귀를 환영하네! 내가 자네를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는가? 몸 성히 돌아와줘서 참으로 고마운 마음일세!”
“아. 작전참모부장님.”
다니엘이 경례를 올리려고 하였지만 에른스트가 손사래를 치며 막았다.
“우리 사이에 경례는 무슨! 됐으니까 그만 돌아가보도록 하게.”
“……돌아가다니요?”
“자네가 출근하면 임무 완료 보고를 받는 즉시 휴식을 보장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왔네. 그러니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하게나.”
황제의 입김인지 셀비아의 입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의를 봐주려는 의도는 느껴졌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이라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상부에서 쉬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었고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에 에른스트가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내일은 참모 본부가 아니라 황궁에 출석하도록 하게.”
“황궁이라니? 설마 황제 폐하께서 저를 또 호출하신 것인지?”
“응? 아니네. 이번에는 황녀 전하께서 자네를 보고자 하시더군. 아마 벨라노스 회담에 관련해서 질문하실 사항이 있으신 모양이야.”
황제가 아니라 황녀라니 듣던 중 다행인 소식이었다.
‘일방적으로 나를 경계하는 황제보다는 그나마 내게 우호적인 셀비아가 나으니까…….’
물론 사회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둘 모두 대면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황제 베르트함보다는 황녀인 셀비아를 만나는 쪽이 몇 배는 나았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본 다니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부관이 보이지 않는군요. 혹시 제 개인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겁니까?”
“부관? 아…….”
깜빡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잠시 머뭇거리던 에른스트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사실 자네 부관은 지금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네.”
“휴가 말씀이십니까?”
“그래. 선박 격침 사건 이후에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내가 자네 부관에게 장기 휴가를 신청할 것을 권유하였네. 아무래도 직속 상관의 죽음이니 휴식이 필요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일세. 물론 지금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지만 말이지!”
에른스트가 장난스럽게 넘어가기 위해 다니엘의 허리를 툭 두드린다.
그러나 다니엘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하였기에 에른스트는 기가 죽은 채 말을 이었다.
“뭐…… 지금은 숙소에서 쉬고 있을 걸세.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가 직접 부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나?”
에른스트가 넌지시 건네는 말에 다니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날 암살하려고 한 여자의 숙소에 찾아가라고?’
악어의 주둥이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다니엘은 거절의 답을 내놓으려다가 멈칫하였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부관이 충격을 받고 숙소에 틀어박혔다는데 걱정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면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뻔하였다.
안 그래도 황제가 눈에 불을 켜며 이쪽의 흠결을 찾고 있는 와중인데 이런 식으로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다니엘은 이를 꽉 깨문 채로 어그러지는 미소를 지었다.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전참모부장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제 부관의 숙소에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지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역시! 우리 제국의 영웅인 다니엘 중령은 마음까지 풍족하구만! 뭣들 하고 있나? 박수를 치지 않고!”
눈치 없는 상관을 두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
한편, 루시 에밀리아의 숙소.
“…….”
암막 커튼으로 빛을 차단한 방 안에서, 루시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며칠간 씻지 않아 머리는 푸석했으며,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고, 볼에는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휴가 신청이 수리된 이후 이곳에 틀어박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에 루시는 아무런 신경도 기울일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죄책감과 회한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나 때문에…….’
루시의 의식은 먼 과거를 유영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과거에 일어난 끔찍한 기억들을 말이다.
─ 너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실험체 96번이야. 여기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더라.
루시에게 있어서 최초의 기억은 항상 실험체 96번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무채색이었던 루시의 유년기에서 유일하게 색을 발하던 존재였다.
붙임성이 좋았던 아이는 차갑게 대하는 루시와 친해질 수 있었고, 조금씩이나마 마음의 문을 열던 루시는 결국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이는 이곳을 탈출하는 것에 성공하면 같이 꼭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말해주곤 하였다.
꿈도 희망도 없는 연구소에서 루시는 그 아이를 서서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끼손가락을 걸고 맺은 사소한 꿈이 이뤄지는 일은 영원히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 실험체 96번은 처분되었다. 너 또한 처분당하기 싫다면 최선을 다해라.
어느 날 실험체 96번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이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나이에 루시는 죽음을 이해하였다.
‘그 뒤로도…….’
유영하던 의식이 조금 먼 미래로 흘러간다.
저택이 보인다.
백작 칼레드라의 거대한 저택이었다.
그곳에서 루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모든 게 풍족했으며 가질 수 없는 것이 없었고 다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꿈과도 같은 세상에서 살던 루시는 또래의 시녀를 발견하였다.
시녀는 밝은 성격에 수다쟁이였기 때문에 루시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말수가 적은 루시는 시녀를 말을 통해 밖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밀밭의 아늑함과 정오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끝에 루시는 다시금 마음의 문을 열고 시녀와 친해질 수 있었다.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기뻤던 나머지 루시는 백작 칼레드라에게 어리광을 부렸었다.
─ 아버지! 제 친구랑 여행을 갔다 와도 될까요? 하루면 될 것 같아요!
칼레드라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의 이름을 물었다.
순진했던 루시는 이름을 그대로 말해주었고, 시녀는 다음 날부터 저택에 출근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큰 사고를 당해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루시는 칼레드라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
루시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러며 이를 꾹 깨물었다.
표출할 곳 없는 감정이 내면에서 응어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앞선 감정이 루시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숨소리를 내뱉은 루시는 생각했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실험체 96번이 죽었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시녀가 죽었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다니엘 슈타이너가 죽었다.
우연이 세 번 연속으로 일어나면 필연이라고 하였다.
이성은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감정에 잡아 먹힌 마음은 이미 검게 물들고 있었다.
자신을 긍정하는 것보다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보다 편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내가 좋아하게 되는 모든 사람이 죽어버린다면…….’
어째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 삶에 대체 무슨 영광이 있을까.
더는 생각하기 싫었고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백작 칼레드라를 의심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던 루시가 스르르 눈을 뜬 순간이었다.
똑똑─
현관에서부터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인가 싶었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관! 여기 있다고 해서 왔는데…….”
다니엘 슈타이너의 목소리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루시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다니엘 슈타이너는 죽었다.
“부관? 문단속도 안 하고 뭐하는 거지? 강도가 들면 어쩌려고 그러나.”
환청인줄 알았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한 루시가 몸을 일으킨다.
며칠간 굳어 있던 몸이 갑자기 움직이려 하니 저도 모르게 삐걱거린다.
“윽…….”
귀에 이명이 울리고 시야가 점멸한다.
숨소리는 조금 더 격해졌으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천천히 몸을 제어하였고, 끝끝내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성공하였다.
“부관! 숙소에 없는 거라면 나는 이만 돌아가보겠다!”
안 된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은 루시가 방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붙잡았다.
심호흡 끝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루시는 볼 수 있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자신의 상관이자 디저트를 좋아하는 바보 같은 남자를 말이다.
“……부관?”
루시의 몰골을 본 다니엘이 의아함을 머금는다.
그런 다니엘을 한동안 바라보던 루시가 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가고 싶었지만 며칠간 굶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탓이다.
“다니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푹 잠긴 목소리가 이리저리 갈라지고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기어코 걸음을 옮긴 루시는 지근거리에서 다니엘을 올려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지만, 다니엘의 모습을 보는 것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상관의 이름을 멋대로 부른 루시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그물에 걸린 것처럼 느릿하게 올라가던 손이 다니엘의 뺨에 닿는다.
당황한 다니엘이었지만 피하지 않았고, 덕분에 루시는 자신의 손에 닿은 감촉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니엘 슈타이너는 죽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에 갑자기 눈물이 차오른다.
이미 몇 번이나 울음을 흘려서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루시가 고개를 숙인다.
손 또한 고개와 마찬가지로 내려가서 다니엘의 붉은 넥타이를 붙잡는다.
“중령님. 넥타이의 위치가…….”
보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려던 루시는 결국 흐느낌을 참지 못하였다.
잇새를 타고 흘러나오는 물기 어린 신음이 둘 사이에 서글프게 울려 퍼진다.
참지 못하고 넥타이를 살며시 잡아 당긴 루시가 다니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떨리는 어깨, 거칠어진 숨소리, 옅은 흐느낌이 루시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바보처럼 흐느끼던 루시는 최대한 힘을 내서 말문을 열었다.
“잘…….”
미증유의 감정 속에서 루시는 최대한 절제하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중령님이…….”
그러나 곧 하얀 물감을 떨어트린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져간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다니엘이 별안간 손을 들어 루시의 등을 토닥여준다.
덕분에 루시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옛날, 울어야 할 때를 놓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