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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1 - Chapter 91

당당하게 반문하는 다니엘 덕분에 장교는 혼란에 휩싸였다.

‘다니엘 슈타이너를 모른다고?’

제국의 전쟁 영웅이자 총력전 연설로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다니엘 슈타이너였다.

제아무리 바다 건너에 위치한 벨라노스라고 해도 신문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라면 다니엘 슈타이너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의심이 증폭된다.

‘거기다…….’

눈앞의 남자는 상부로부터 전달받은 다니엘 슈타이너의 체격과 일치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목구비 또한 다니엘 슈타이너의 초상화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초상화와 다니엘을 번갈아 바라보던 장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선글라스를 벗어줄 수 있겠나. 확인이 끝나면 더는 붙잡지 않겠네.”

덕분에 다니엘은 낮게 침음하였다.

예상은 했지만 장교가 쉽게 물러나지 않으니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내 정체가 탄로난다. 하지만…….’

장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외모가 비슷하다고 하여 하급 장교가 벨라노스의 일반 시민을 강제로 연행할 수 있을까?

권한이 있다고 해도 상부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니까.’

재차 부정하면 장교는 연행 허락을 받기 위해 상부에 무전을 할 터였다.

그렇게 시간을 번 뒤에 빈틈을 노려 도망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다니엘이 손을 올린다.

“말하지 않았나.”

선글라스를 붙잡아서 살며시 아래로 내린 다니엘이 서늘한 낯빛으로 장교를 노려보았다.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니엘과 눈이 마주친 장교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게 늑대를 닮은 날카로운 눈초리가 초상화에 그려진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경례를 올리려던 장교는 문득 드는 생각에 멈칫하였다.

‘잠깐만. 계속해서 모른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킨 장교가 다니엘의 업적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노르디아 침공 작전의 일등 공신.

제국 2등급 보국훈장인 국선장 보유자.

제국 1등급 수교훈장인 황금 십자 훈장 보유자.

최연소 영관급 장교.

황위 계승권 싸움을 종식시킨 황녀파의 핵심 인물.

총력전 연설로 국민을 결집시킨 위대한 연설가.

큼지막한 업적들만 나열해도 이 정도였다.

남들은 평생 살면서 한 번 이루기도 힘든 업적들을 다니엘은 모두 섭렵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다니엘 슈타이너는 천재적인 참모다.

범인은 감히 그의 생각을 유추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분명 정체를 숨기시는 것도 내가 모르는 작전의 일부겠지.’

모든 걸 알아차린 장교는 경례를 하는 대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들어 제복모의 챙을 살짝 내리는 것으로 예의를 표한 장교가 발길을 돌린다.

병사들 또한 다니엘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장교를 따라 여관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다니엘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뭐지? 그냥 간다고?’

장교의 속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다니엘이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한 다니엘은 서둘러 계단을 올라 자신의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 없어. 도망가려면 지금이 적기다. 장교가 돌아가기는 했지만 이쪽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

장교는 분명 다니엘 슈타이너와 이목구비가 일치하는 존재를 찾았다고 상부에 보고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확인을 위해 상부에서 보다 높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병사들을 대동하여 찾아올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제국의 포위망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다니엘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

다니엘의 시야에 거대한 수상 전투함 4척이 항구에 정박한 상륙함과 보급선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텐타르바헴 항구가 작아보일 정도의 함대 규모에 다니엘이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나 하나를 찾기 위해 저만한 함대를 보냈다고?’

기껏해야 함선 하나 정도가 왔을 거라고 생각한 다니엘은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제정신인가?’

자신에게 향해 있는 셀비아의 집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생각해도 저 포위망을 뚫고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

새벽, 벨라노스 내각총리대신 로웰 테일위스는 집무실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왜 하필 자국 영해에서 사고가 발생했단 말인가……!’

벨라노스 영해에 진입한 제국의 외교 공관용 선박이 격침당한 이후로 로웰은 제국 측의 온갖 요구와 성명들로 인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제국에서 ‘국경을 개방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꼈을 정도다.

국경을 개방하라는 것은 벨라노스에 제국의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중립국의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통보였지만, 벨라노스 영해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 때문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덕분에 제국의 함대는 텐타르바헴 항구에 무혈입성하여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에 성공한 제국이 다음에는 또 무슨 요구를 해올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두려웠던 로웰은 군사정보국을 통해 테러리스트에게 영해를 개방한 자를 하루 빨리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하루 빨리 범인을 찾아 제국에 인도하는 것으로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만약 우리가 아니라 제국에서 먼저 범인을 찾아낸다면…….’

제국에서는 벨라노스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군의 인사 목록을 요구한 후 내정 간섭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던 로웰이 눈을 감은 채 신께 기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눈을 뜬 로웰이 말했다.

“들어오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국방정보국장이 들어온다.

정보국장은 긴장한 안색으로 내각총리대신인 로웰에게 경례를 하고는 집무실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하. 테러리스트와 내통한 범인을 찾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범인은 해군 12지구 방위사령관 대령 에드볼이었다고 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화색한 로웰이 주먹을 꽉 쥐었다.

“다행이군! 놈을 어떻게 색출하였나?”

로웰의 말에 정보국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송구합니다만 군사정보국에서 범인을 색출한 것이 아닙니다. 에드볼은 군사정보국에 찾아와서 자백을 했습니다.”

“……자백을 했다고?”

“예. 듣기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군사정보국을 찾아오더니 자신의 범행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잠시 뜸을 들이던 정보국장이 말했다.

“에드볼 대령의 말을 참고하자면, 다니엘 슈타이너의 사조직이 자신의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모종의 협박을 당했다면서 살려달라 빌었다더군요. 공포에 질린 채로 말입니다.”

정보국장과 로웰의 사이에 침묵이 형성된다.

목이 타는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던 로웰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군사정보국이 범인을 색출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 슈타이너의 사조직이 범인을 색출했다는 말인가? 놈들이 협박하여 에드볼 대령이 자백을 한 것이고?”

“정황상 그렇습니다.”

정보국장의 말에 따르면 다니엘 슈타이너는 격침 당한 선박에서 생존한 이후로 가만히 숨어 지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죽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위장한 다니엘 슈타이너는 텐타르바헴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로웰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설마…….’

로웰은 딸아이가 최근 저택에 손님을 초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택의 사용인들 중 대부분은 로웰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바쁜 나머지 그 뜬금없는 소식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다니엘 슈타이너가 살아 있는 것에 모자라 그동안 활약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으니 식은땀이 흐른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로웰은 서둘러 책상 위의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수화기를 든 로웰은 미친 사람처럼 회전 다이얼을 돌렸다.

이후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린 끝에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아빠? 이 시간에 왜 전화질이야.

방금 잠에서 깬 것인지 노곤한 음성이다.

해야 할 말을 정리하던 로웰이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레프. 잘 들어라. 네가 초대한 남자에 관해서 질문할 게 하나 있다.”

─ 누구? 아아. 리벨라드 말하는 거야? 괜찮은 남자였어. 유머감각도 좋고.

“그걸 물으려는 게 아니다! 인상착의…… 그러니까 네가 그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나?”

제국은 해안가에서 다니엘 슈타이너의 제복을 발견한 이후 오두막을 조사하였다.

정확히는 오두막의 주인을 수소문하여 찾아낸 것이다.

오두막의 주인은 해안가 인근에서 살고 있는 노인이었는데, 오두막에 버린 물건이나 옷가지들을 서류에 적어 보관하고 있었다.

그 서류를 받은 제국은 교차 검증을 하다가 오두막에서 선글라스, 모자, 옷가지 몇 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다.

제국은 해당 정보를 벨라노스의 정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였고, 덕분에 로웰은 다니엘이 어떤 복장으로 텐타르바헴을 활보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로웰은 자신의 딸아이와 접촉한 인물이 다니엘 슈타이너가 맞는지 의상착의로 검증하려는 것이었다.

─ 그런 건 대체 왜 물어? 이제 와서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지? 불법체류자 정도면 뒤탈이 없겠다 싶어서 허락한 건 그쪽이다? 알고는 있으라고. 아무튼 인상착의라…….

레프는 툴툴거리면서도 기억을 되짚었다.

─ 음. 일단 페도라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상태였어. 거기에 허름한 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색상이 위쪽은 갈색이었고 아래쪽은 회색이었을 거야. 노인네나 입을 거 같은 의상이었는데 은근 어울리더라. 잘생겨서 그런가?

레프의 이야기를 들은 로웰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제국에서 건네받은 정보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슈타이너는…… 독자적으로 범인을 수색한 것에 모자라 내 딸아이와 접촉하였다는 건가.’

그것도 세상에 비밀로 하고 있는 사생아를 말이다.

다니엘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공포감이 엄습한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애써 두려움을 숨기고 있을 찰나에 레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아. 그리고 뭐였더라? 우리 망할 아버지한테 말을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아아. 기억났다.

레프가 다니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 올바른 정치를 하셔야 할 겁니다. 이러던데?

덕분에 로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건 어떻게 봐도 내각총리대신인 자신을 향한 협박이었다.

몇 번의 숨소리를 흘린 끝에 알겠다고 대답한 로웰이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틀렸네.”

전화를 끊은 로웰의 두 눈동자에 침울한 빛이 들어선다.

“틀려도 한참 틀렸어.”

이를 꾹 깨문 로웰은 저도 모르게 흐느꼈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던 건 제국이 아니야…….”

그의 흐느낌은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자책과 같았다.

“우리의 적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쥐어뜯은 로웰이 울분으로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바로 그 악마였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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