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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9 - Chapter 89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던 에드볼이 침을 꿀꺽 삼킨다.

일단은 협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에드볼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인 에드볼이 소파에 걸어가서 함탈의 건너편에 앉는다.

병사로 위장한 흑조의 대원은 여전히 권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그게 신경쓰였던 에드볼이 곁눈질을 하자 함탈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대원이 군말 없이 권총을 내린다.

자신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챈 에드볼이 내심 안심하며 함탈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게 뭐요?”

함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에드볼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침묵은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법이다.

부담감을 느낀 에드볼은 함탈이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말문을 열었다.

“제국 정보부에서 나왔나? 그렇다면 협조하도록 하겠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잠수함에게 영해를 개방하라 명령한 건 내가 맞다. 하지만 이건 연합국에서 협박을 했기 때문일세. 관련해서 증거를 제출할…….”

잠깐.

말을 이어가던 에드볼은 멈칫하였다.

사고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증거가…… 있었나?’

에드볼은 연합국과 거래를 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연합국은 항상 사람을 시켜 에드볼에게 구두로 명령을 내리거나 뇌물을 전달했었다.

그것도 연합국이 원하는 인적이 전무한 장소에서만 말이다.

또한 뇌물은 은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가 아닌 순수 현금이었다.

그건 곧 기본적인 문서는 물론이고 통신 기록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거가 없다.

그제야 연합국에게 당했다는 걸 깨달은 에드볼의 두 눈동자가 가늘게 떨린다.

“에드볼.”

그런 에드볼을 지켜보던 함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네게 원하는 건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세상을 향해 진실을 말해주기를 바랄 뿐이지.”

에드볼이 식은땀을 흘렸다.

벽걸이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가쁜 숨을 내쉬던 에드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는 못 한다. 그건 나더러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거래를 하러 왔으면 제대로 된 제안을 말하도록 해라.”

함탈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아직도 제국의 정보부 요원으로 보이는 모양이군. 멍청한 것에는 약도 없다더니.”

잠시 고민하던 함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내 옛날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함탈이 손을 들어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졌다.

“에드볼. 손톱이 빠지면 다시 자라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나?”

에드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하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평범한 생애를 살았다면 손톱이 빠지고 자라는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까.

“짧게는 육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 가까이 걸리지. 미리 말해주자면 나도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네. 손톱이 뽑히는 경험은 정말이지 최악의 고통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야.”

함탈이 낮게 혀를 찬다.

“내가 어렸을 때는 흑인이 차별 받는 게 당연하였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흑인을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지.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짐승과 동급이었으니까 말이야.”

함탈이 자조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가 왜인지 모르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다.

“나 또한 그때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네. 내 주인 되는 자가 나를 짐승으로 대했기 때문이지. 놈은 지독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흑인 노예들을 고문하는 것이었다네.”

함탈이 가죽 장갑을 벗었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함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덕분에 나는 주인에게 매타작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지. 온몸에 상처를 달고 살았어.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이 정도면 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뭔가. 지독한 노예근성이었지.”

“…….”

“그러나 내 주인은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어느 날 펜치를 들고 다가오더군. 그 날 나는 비명 속에서 손톱을 잃었네.”

함탈이 손을 돌려서 에드볼에게 손을 보여주었다.

일정하지 않게 자라나 있는 울퉁불퉁한 손톱이 보인다.

뽑힌 손톱이 새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변형이었다.

“고통스러웠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훗날 알아보니 손톱 아래에는 신경이 과도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하더군. 그러니 살갗을 베이는 것 정도는 우스울 정도의 고통이 올 수밖에.”

손을 거둔 함탈이 장갑을 도로 착용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손톱을 잃은 덕분에 물건을 집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어. 무언가를 집으려고 할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손 끝에 전해지니 물 컵 하나 들기도 힘들더군.”

“…….”

“그래서 결심했네. 내게 이 지옥을 선사한 주인을 죽여버리자고. 그 분노 하나만으로 수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 복수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네.”

함탈의 두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가 다시 떠진다.

“주인의 폭거를 견디다 못한 내 동료 노예가 총을 빼앗아서 쏴버렸기 때문이지.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나? 어디 한 번 말해보게.”

함탈의 눈치를 보던 에드볼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기쁘지 않았겠소?”

낮게 웃음을 흘린 함탈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주인은 너무 쉽게 죽었지. 머리에 총알이 박혔으니 그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았을 테지. 그에게 있어서 평온한 죽음은 엄청난 사치나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분노했지. 가능하다면 놈을 살려내고 싶었어. 살려내서, 내가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현세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지.”

웃음을 갈무리한 함탈이 에드볼을 빤히 바라본다.

“그런데 그 분노가 이제는…….”

공허한 눈동자에는 차가운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자네에게 향하려고 하네.”

그 말소리에 에드볼은 두려움을 느끼며 숨을 가삐 내쉬었다.

저 말에는 단순히 고문을 하겠다는 의미를 뛰어넘은 미지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겁에 질린 에드볼을 가만히 지켜보던 함탈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생각이네. 나는 내 주인과는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러나 에드볼. 자네가 만약 우리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함탈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기꺼이 악마가 되기를 자처할 걸세.”

함탈을 마주 보고 있던 에드볼은 숨을 헐떡이다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렸다.

함탈의 시선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기회는 이번 한 번이 끝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지.”

세상에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너는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뜻으로 말을 전한 함탈이 테이블 위의 페도라를 집어서 머리에 쓴다.

이후 함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에드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무엇을?”

“당신들이 제국의 정보부에서 나온 인원들이 아니라면, 대체 뭘 위해서 공관용 선박 격침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오.”

에드볼은 용기 내어 건넨 질문이었지만 함탈과 흑조의 대원은 같잖다는 듯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웃음소리가 뚝 끊기더니 함탈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고 있을 텐데. 너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건들지 않았나.”

에드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설마…….”

다니엘 슈타이너에게 무장 친위대라 불리는 소재 불명의 사조직이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볼이 함탈의 정체를 간파했을 무렵 목 뒤편에서 퍽 하는 충격이 전해진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쓰러진 에드볼이 눈을 까뒤집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함탈이 보인다.

“모든 것은…….”

의식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에드볼이 기절하기 직전, 함탈은 페도라의 챙을 아래로 내리며 속삭였다.

“다니엘 슈타이너를 위해.”

*

한편, 셀비아의 명령에 의거 벨라노스의 영해를 가로지른 제국의 함대는 텐타르바헴의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거대한 수상 전투함 4척이 호위하는 가운데, 수색 병력을 태운 상륙함 4척과 보급선 2척이 바다를 가로지르며 항구에 도착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거기에 해상 초계기가 함대 주변을 돌고 있었으며, 제국의 전투기 몇 대가 텐타르바헴의 상공을 정찰하듯 날고 있었기에 시민들은 처음에 전쟁이 일어난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괜한 오해가 생겨서는 안 되기에 벨라노스에 도착한 함대 사령관은 시민들에게 병력이 도착한 이유를 설명하고는 수색 작전을 명령하였다.

휴식을 취할 시간도 사치라는 것처럼 병력들은 군말 없이 수색 작전에 돌입하였다.

그 수색 병력에는 황실 친위대 또한 포함되어 있었는데, 친위대의 수석 경호를 맡고 있는 하르트만이 대대급 인원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인근 해안을 조사한다! 황녀 전하의 명이다! 샅샅히 뒤져라!”

한 해안가에서 하르트만이 명령을 내리자 친위대원들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색을 실시하였다.

병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하르트만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버려진 어선과 오두막이라…….’

어딘가 모르게 군색한 풍경이다.

한동안 풍경을 감상하던 하르트만이 오두막을 한 번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발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

“하르트만 중령님!”

부하의 목소리에 자연히 고개가 돌아간다.

부하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을 한 채 말문을 열었다.

“……발견한 것 같습니다.”

발견했다는 말에 하르트만은 즉시 부하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부하의 발아래쪽에 모래에 파묻힌 제복이 보인다.

‘이건…….’

무릎을 굽힌 하르트만이 모래를 파내어 제복을 꺼내었다.

제복에는 국선장 금장은 물론이고 황금 십자 훈장까지 달려 있었다.

틀림없는 다니엘 슈타이너의 군 제복이었다.

“허…….”

어이가 없었던 하르트만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자 부하가 말했다.

“제복을 숨긴 걸까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르트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급한 대로 모래를 파서 제복을 넣은 모양이군. 요 며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다 흩어져서 드러난 거 같고.”

“다니엘 중령이 왜 그런 짓을…….”

“조난을 당한 시점에서 벨라노스 내에 적국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 정체를 숨기고자 제복을 벗었다고 보는 게 합당하겠지.”

제복을 내려놓은 하르트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정체를 숨긴 건 아닐 것이다. 분명 다니엘 중령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죽은 상황을 이용하려고 했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판데임 중사. 잘 생각해 보게. 다니엘 슈타이너의 죽음을 소명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는 벨라노스에 군을 무혈입성시켰네. 이게 뭘 의미하겠나?”

이제 벨라노스의 내각총리대신은 제국에게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국의 영해 내에서 제국을 향한 테러가 발생한 것에 모자라 내부에 연합국과 협력한 배신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제국의 군대까지 벨라노스에 진입하였으니 내각총리대신 입장에서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외교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걸 깨달은 판데임 중사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확실히 제국은 외교상 막대한 이점을 보게 되겠습니다. 하지만 다니엘 중령은 왜 고국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겁니까?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다니엘 슈타이너는 기본적으로 아군을 믿지 않는다. 누가 스파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

일전에 제국의 남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니엘은 제국 내부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남부로 내려가 황자의 사조직을 일거에 소탕하였으니까.

적을 속이려면 아군까지 속여라.

이 격언을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것을 하르트만은 모르지 않았다.

혀를 내두른 하르트만이 부하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고 고국에 알려라. 상심하고 계실 황녀 전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알겠습니다!”

힘차게 경례를 한 판데임 중사가 무전병을 향해 걸어간다.

부하를 떠나보낸 하르트만은 고개를 들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슈타이너는 분명 저곳에서 암약하고 있을 것이다.

‘본래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건 알았지만…….’

제국을 위해 자신의 죽음까지 이용하다니 이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낀 하르트만이 마른 침을 삼킨다.

‘저곳에서 또 무슨 흉계를 획책하고 있을지…….’

한 수 앞을 보기에도 급급한 하르트만에게 있어서, 천재 참모인 다니엘의 생각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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