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참모 본부로 출근한 루시는 작전참모 개인 집무실의 문고리를 붙잡은 채 멈춰 있었다.
분명 평소와 같은 출근일 텐데 ‘다니엘 슈타이너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후부터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
괜히 엄한 문고리만 붙잡고 있던 루시는 심호흡 끝에 문을 열었다.
그러자 집무 책상 앞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 다니엘이 보인다.
평소와 같은 광경이었다.
“응? 아.”
루시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다니엘이 신문을 접었다.
“왔나. 오늘은 평소보다 늦은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죄송할 것까지야. 지각만 안 하면 딱히 상관은 없다.”
신문을 한 번 더 접어서 책상에 가장자리에 놓은 다니엘이 서랍을 열었다.
“그보다 오늘은 네게 희소식이 있다.”
“……희소식이라 하시면?”
다니엘이 서랍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제국의 국기에 감싸여 있는 상자의 정체는 루시도 잘 알고 있었다.
루시의 시선이 상자에 고정되자 다니엘은 장난스럽게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축하한다. 특별 진급 심사에서 네 공로가 인정된 모양이다.”
루시는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오늘 다니엘을 죽이고 나면 제국을 떠날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중위로 진급한다고 하여 애로사항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것 봐라.’
루시의 무덤덤한 표정을 다르게 해석한 다니엘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는구나. 속으로는 내 욕을 하고 있을 거면서 말이다.’
원치 않은 진급을 했을 때 느껴지는 허탈함과 분노는 다니엘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루시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한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직접 계급장을 바꿔주도록 하지.”
국기를 펼친 후 상자를 열자 중위 배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들고 루시에게 걸어간 다니엘이 손수 배지를 교체해주었다.
여상한 손놀림으로 루시가 입고 있는 정복의 양 어깨에 중위 배지를 달아준 다니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중위가 된 것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내 부관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도록 해라.”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던 루시는 저도 모르게 망설였다.
다니엘은 오늘 죽는다.
그러니 다니엘에게 있어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부관?”
그게 의아했던 다니엘이 말을 걸자 정신을 차린 루시가 답했다.
“조기에 진급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이 늦은 루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니엘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으니까.
*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루시는 암살 준비에 들어갔다.
지도를 통해 다니엘이 살고 있는 숙소의 인근 지리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입 경로와 도주 경로를 계획하였다.
더해 전투복으로 갈아 입은 후 방탄판을 넣고, 다니엘 슈타이너가 반격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부르는 게 값이라고 불리는 반마력장 탄환까지 챙겼다.
모든 준비를 마친 루시는 광학 위장을 사용한 후 인적이 가장 드문 새벽 시간대를 이용하여 다니엘의 숙소로 향했다.
다니엘의 숙소 앞에 도착한 루시는 문고리를 붙잡고 살며시 돌렸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열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한 쪽 무릎을 꿇은 루시는 품에서 락픽을 꺼낸 후 문의 잠금을 풀기 시작했다.
딸깍─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를 들은 루시는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한 루시가 락픽을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심호흡을 끝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루시가 곧바로 문을 닫는다.
그러며 거실을 한 번 살펴보던 루시는 멈칫하고 말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다니엘의 뒷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눈치를 채고 오늘 잠을 자지 않은 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다니엘 슈타이너다.
혹시 몰랐던 루시가 권총을 꺼내들고는 다니엘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다니엘에게 권총을 겨누며 걸음을 옮기던 루시는 곧 안도할 수 있었다.
옆에서 본 다니엘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흡이 고르고 고개가 살며시 내려가 있는 것을 보면 잠을 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낮게 숨을 내쉰 루시가 품에서 소음기를 꺼내 권총의 총구에 부착한다.
능숙하게 소음기를 부착한 루시는 광학 위장을 해제한 후 다니엘의 머리를 조준했다.
이제 방아쇠를 당겨 다니엘을 죽이고 제국을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제국의 영웅을 죽이는 것이라 아침이 되어 시체가 발각되는 순간 온갖 추적이 따라붙기는 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베풀어준 백작 칼레드라의 명령에 충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루시는 다니엘 슈타이너를 죽여야만 하였다.
방아쇠에 손을 올린 루시가 정확한 조준을 위해 호흡을 정지시킨다.
이제 쏘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손가락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망설임 속에서 암살이 지체되고 있을 무렵, 루시는 시야 언저리에 뭔가가 놓여 있는 것을 의식하였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루시는 소파의 등받이에 다니엘의 장교 코트가 걸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집어진 장교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오래된 종이 한 장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
종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루시는 일단 권총을 내리고 코트의 안주머니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불에 그을린 채 반으로 접혀 있는 종이 한 장과 오래된 사진이 나온다.
루시는 우선 사진부터 확인해보았다.
‘이건…….’
다니엘이 수도원의 고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지금보다 젊은 다니엘이 중앙에서 웃고 있었는데, 고아원 아이들이 다니엘에게 껌딱지처럼 달라 붙은 채 서로 다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필연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잠들어 있는 다니엘의 옆모습을 살펴보던 루시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정보였으니까.
사진을 뒤로 넘긴 루시는 이번엔 종이를 한 번 펼쳐보았다.
오래된 종이 특유의 거친 질감을 느끼며 내용을 읽어내려가던 루시의 손이 멈칫한다.
『……최근 연합국이 건네준 자료에 의하면 실험에 성공한 개체가 있다고 한다.』
‘연합국?’
연합국이 생체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루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다음 문장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하며 그 마법적인 향상성 또한 예상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다. 덕분에 우리 연구진들은 연합국에 경의를 표하며 향후 진행할 프로젝트의 코드를 해당 개체의 이름을 따서 루시 프로젝트로 명명한다.』
루시 프로젝트.
종이의 내용에 따르면 연합국에서 생체 실험에 성공한 개체의 이름은 다름 아닌 루시였다.
덕분에 루시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손을 떨었다.
‘그럴 리가 없어.’
실험을 진행한 것은 연합국이 아니라 제국이다.
‘제국의 인체 실험에 고통받던 나를 구해준 건 칼레드라 백작님이야.’
그러니 이 문서는 거짓말이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 종이는 꽤 옛날의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종이의 표면이 이렇게나 거칠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공기에 노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급조한 조작 문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루시의 시선이 다니엘에게 닿는다.
다니엘이 대체 이 종이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태도였다.
이 문서가 스파이를 색출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의심은커녕 평소처럼 루시를 대해주었다.
‘오히려…….’
보안국에서 수사를 나왔을 때 나서서 막아주기까지 하였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던 루시의 호흡이 가늘게 떨린다.
‘내가 스파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안국과 대적한 것이었다.
대체 왜? 루시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와중에 루시가 권총을 꽉 붙잡았다.
─ 루시. 은혜를 모르는 자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외한 모든 것은 거짓이다.
백작 칼레드라가 자신에게 늘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거짓말이야.’
그러니 평소처럼 칼레드라 백작과 연합국에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 권총을 든 루시가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여기서 다니엘을 죽이고 연합국에 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방아쇠에 손을 올린 루시가 두 눈을 날카롭게 좁힌다.
그러나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에서 다니엘이 해준 말들이 메아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냥. 오늘따라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아서 바라보았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부관의 피부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아. 오히려 향기로울 정도지. 그러니 향수 같은 사치품에 의존하지 말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 제 부관을 곤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혼란이 가중되면서 잠잠해졌던 호흡이 다시금 가빠진다.
─ 가능하다면 우리가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갔으면 좋겠군.
루시가 소리 없이 흐느끼며 눈을 질끈 감는다.
회상 속에서 미증유의 감정을 느낀 루시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만약 종이의 내용이 거짓이라고 해도…….’
다니엘은 루시가 스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누구에게도 루시가 스파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안국에서 구해주려고 하였다.
루시는 다니엘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은혜를 모르는 자는 짐승과 다름이 없었다.
루시는 짐승이 아니었기에 차마 다니엘을 죽일 수 없었다.
강렬한 갈등 사이에서 루시는 결국 들고 있던 권총을 내려놓았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적막 속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던 루시는 자각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절대로 다니엘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