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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5 - Chapter 75

제국 전역이 다니엘 슈타이너의 총력전 연설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정작 장본인은 참담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

참모 본부 휴게실에서 다니엘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든 채로 창밖을 응시하였다.

저 멀리 참모 본부 입구 너머에서 피켓을 든 채 서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피켓에는 ‘우리는 총력전을 원한다!’라는 선전 문구나 ‘제국의 영웅! 다니엘 슈타이너!’같은 응원 문구가 적혀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들은 연설에 감명받은 나머지 다니엘을 직접 보고 싶어서 몰려온 시민들이었다.

시민들 사이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까지 섞여 있었으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도 일찍 퇴근하기에는 글렀군…….’

참모 본부를 나서는 순간 원하지도 않은 찬사를 들으며 온갖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할 것이 분명하였다.

참고로 이건 다니엘의 예상이 아니라 경험담이다.

며칠 전에 저들을 무시하고 가려다가 소동이 일어났었으니까.

그 소동을 듣고 모여든 인파에 둘러싸여서 두 시간 가까이를 온갖 질문에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 다니엘이었다.

‘아이돌이 사생팬을 왜 싫어하는 건지 이해가 될 정도야.’

마뜩잖은 눈빛으로 종이컵을 들어 올린 다니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며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에 대해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오! 이게 누군가!”

등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니엘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했더니 작전참모부장인 대령 에른스트였다.

다니엘에게 가까이 다가간 에른스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영웅 다니엘 슈타이너 아니신가. 요즘 출근하기만 하면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으려고 하기에 걱정했는데 얼굴을 보니…….”

인사치레를 하기 위해 다니엘을 바라본 에른스트는 멈칫하였다.

다니엘의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더 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괜찮은 거 같지는 않군. 요즘 통 잠을 못 자는 모양이야?”

“이런저런 문제들로 고민이 깊어져서 말입니다.”

“무슨 고민이지? 내가 보기에는 자네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진 거 같은데. 상부에서도 다들 자네가 한 총력전 연설을 극찬하고 있을 정도야.”

그게 바로 다니엘의 고민 중 하나라는 것을 에른스트는 알지 못하였다.

총력전 연설의 파급력은 다니엘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단순히 제국의 국민들이 환호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서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외신 기자들도 이를 연일 보도하고 있으니 다니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연설 이전 상황에서의 망명 난이도가 바늘 구멍 통과였다면, 연설 이후의 망명 난이도는 콘크리트 벽을 통과하는 것과 같았다.

요컨대 불가능에 가까워졌단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지는…….’

제국을 패권국으로 만들거나 믿을 수 있는 브로커를 통해 신분을 세탁한 뒤 외국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둘 모두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총력전 연설을 통해 세계 대전에 대한 준비가 빨라지기는 하였지만, 제국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삼국이며 그들은 모두 열강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지리상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제국은 두 손으로 세 곳을 틀어막아야 하는 불리한 전제 속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

‘제국이 기적적으로 연달아 승리를 거두지 않는 이상에야…….’

패배하여 전범국이 되어버린다는 결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 브로커를 통해 신분을 세탁하고 타국으로 도망가는 건? 이건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생존해 있다는 걸 아는 이상 제국이든 연합국이든 날 찾으려고 들 테니까.’

아예 죽은 상태로 위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방법이 없을까…….’

참담한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골몰하던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상관을 옆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대령님의 말대로 탄탄대로가 열리긴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로를 지탱하는 다리가 부실 공사로 지어진 것 같아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에른스트는 멈칫하였다.

‘부실 공사? 지금 제국의 수뇌부가 무능하다고 말하는 건가.’

식은땀을 흘린 에른스트가 다니엘을 떠보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혹시…… 부실 공사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저 말이 다니엘에게는 묘하게 ‘제국을 탈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로 들려왔다.

‘에른스트는 이걸 고속 진급에 대한 불안감 정도로 알고 말한 거겠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한 다니엘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예. 가능하다면 제거할 생각입니다.”

에른스트의 어깨가 움찔 떨린다.

태연하게 제국 수뇌부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에 모자라 그들을 찾아 제거한다고 말하는 다니엘의 말이 두렵게 다가온 것이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야. 다니엘이라면 정말 실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니엘의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킨 에른스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니엘 중령? 자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무능한 편인가?”

갑자기 무슨 소리지? 에른스트를 돌아보며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대령님은 무능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린 에른스트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네. 앞으로도 무능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에른스트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이 열심히 한다는데 거기다 대고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

한편, 황궁의 식당.

쓸데없을 정도로 넓고 웅장한 식당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벽면에 도열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황제 베르트함은 긴 식탁 앞에 앉아 딸과 아내를 곁에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셀비아. 네 결단이 옳았던 것 같구나.”

화려한 의자에 앉아 고기를 자르던 베르트함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한다.

“다니엘을 연설가로 세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니엘 덕분에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결집하고 있지.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인 베르트함의 칭찬에 셀비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저는 그저 아버지께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에요.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으니까요.”

“음. 나한테 배웠다라. 그렇다면 잘못 배웠구나.”

셀비아의 입가에 감돌던 미소가 사라진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무렵에 베르트함이 말을 이었다.

“나라면 다니엘을 연설가 자리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는 다니엘 슈타이너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을 테니까.”

“……다니엘 중령이 원했던 일이라고요?”

“그래. 다니엘은 내 생각 이상으로 영민한 놈이다. 그러니 얼마 전 사격장에서 내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테지.”

썰어낸 고기를 입 안에 넣은 베르트함이 가볍게 우물거린다.

고기를 목 너머로 넘긴 베르트함은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에 말했다.

“놈은 늙은 황제가 자신을 압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위기감을 느꼈을 거야. 그 위기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 무엇일까.”

“그건…….”

“연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제국 전역에 펼치는 것이다. 제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감히 자신을 건들 수 없게끔 말이다. 그리고 놈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셀비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버지. 지나친 억측이에요.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베르트함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억측이라. 셀비아 너는 다니엘이 연설의 끝자락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건가?”

“연설의 끝자락이라면…….”

“황제 폐하의 비호 아래에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겠다고 하였지. 마치 자신의 연설 내용이 황제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처럼 말이다.”

식기를 내려놓은 베르트함이 셀비아를 바라보았다.

“다니엘의 연설은 황제의 뜻인가? 말해봐라 셀비아. 너는 다니엘에게 저런 연설을 하라고 명령한 적이 있었나?”

대답할 수 없었다.

셀비아가 국가 선전부와 다니엘에게 요구한 것은 급진적인 총력전 연설이 아니었으니까.

결과가 성공적이라서 잊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연설문의 내용을 부정하고 자신의 임의대로 연설을 이어나갔다.

불복종에 가까웠다.

“다니엘은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셀비아 너는 다니엘을 처벌할 수 없지. 총력전 연설로 인해 제국 전역에 훈풍이 불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다니엘을 처벌한다면 너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베르트함은 손수건을 들어 입가를 닦아내었다.

“셀비아. 너는 아직 어리구나. 정치적으로 여물지 못하였어. 다니엘에게 이용당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다니엘을 이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몰래 주먹을 쥔 셀비아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다니엘은 제가 연설가를 제안했을 때 부정했어요. 강요한 건 저였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용당했다는 말인가요?”

입가를 모두 닦아낸 베르트함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현명한 자일수록 본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다니엘이 왜 네 제안을 부정했을 것 같나? 정말 달갑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부정한다고 해도 네가 강요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

“강요할 걸 알았는데도 왜 부정했을까. 혹여 일이 정말 잘못된다고 해도 ‘저는 원치 않았으나 전하께서 시키신 일’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베르트함이 손수건을 접어서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셀비아. 너는 이번 선택으로 제국을 융성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황실의 권위를 위협하는 다니엘이란 늑대의 몸집을 불려주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침묵하는 셀비아를 향해 베르트함이 두 눈을 날카롭게 좁혔다.

“놈에게 목이 뜯겨나갈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러니 명심해라. 다니엘 슈타이너는 제국에 다시 없을 훌륭한 인재지만…….”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잠시 뜸을 들이던 베르트함이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만큼 위험한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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