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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4 - Chapter 74

함성과 환호가 열광적으로 휘몰아치는 공간에서 다니엘은 역설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분명 반전주의자들을 자극하려고 한 연설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반전주의자들을 감화시켜 전쟁 옹호자로 만들고 말았다.

물론 모든 반전주의자들이 연설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분위기에 휩쓸려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여전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다니엘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수가 ‘몇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소수라는 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가 싶어서 연설의 내용을 복기하던 다니엘이 낮게 침음을 흘린다.

‘망할. 전쟁광 연기에 너무 몰입했군…….’

연설을 하는 도중에 군중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심취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또한 통계의 숫자를 너무 맹신한 것도 다니엘의 패인이었다.

반전주의자가 과반이니 총력전을 원한다는 급진적인 연설에 무조건 반대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대를 하기는커녕 들고 있던 전쟁 반대 팻말을 버리면서 기립하였다.

그 결과가 지금 다니엘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 다니엘 슈타이너! 다니엘 슈타이너! 다니엘 슈타이너!

일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기립한 채 한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는 모습은 언뜻 비현실적이기까지 하였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이었으며 다니엘이 만든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던 다니엘은 이를 꾹 깨물며 연단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다니엘이 시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을 때, 무대 뒤편에 있던 국가 선전부 공보 담당자인 한스는 쾌재를 내질렀다.

“됐다! 이건…… 이건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이다!”

흥분한 한스가 부하 직원을 돌아보았다.

“지금 당장 보도국장에게 연락해라! 해당 연설을 기사화해서 제국 전역에 뿌리라고 말이다! 이걸 라디오로 듣지 못한 제국민들도 다니엘 중령님의 연설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다른 직원들 또한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무대 뒤편에 설치되어 있는 텔렉스를 시끄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다들 자신들의 임무에 열중하느라 입을 닫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다니엘의 연설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는 선전부조차 들뜨게 만들 정도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켰기 때문이었다.

한스 또한 흥분되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니엘 중령이 우리가 준비한 연설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기대한 것 이상으로 연설을 성공시켰으니 황태녀인 셀비아의 책망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역으로 선전부 인원들에게 포상이 내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한 한스가 미소를 지었을 무렵에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본 한스는 무대의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다니엘을 볼 수 있었다.

다니엘이 무대에서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아직도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것이 연합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상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성공적인 연설을 마쳤는데도 다니엘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설에 성공한 연설가들은 기뻐하거나 희열에 잠기는 것이 보통인데, 다니엘은 무감한 눈동자로 무대 뒤편에 모여 있는 선전부 인원들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다니엘의 모습에 한스는 경외감을 느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철인을 보는 것 같은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심에 잠겨 있는 눈동자 또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 쉽사리 말을 걸 수 없을 정도였다.

반면, 다니엘은 그냥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생각하며 넋이 나가 있을 뿐이었다.

‘미치겠군…….’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다니엘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을 찰나에 한스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저, 다니엘 중령님?”

다니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보자 한스가 어깨를 움찔 떨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연설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미리 말씀을 주셨다면 수정을 했을 텐데, 전적으로 국가 선전부의 잘못입니다.”

한스의 말을 들은 다니엘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니 숙소로 돌아가고 싶군요.”

“아. 예! 물론입니다! 밖에 차량을 대기시켜놨으니 바로 타고 가시면 됩니다!”

한스의 말을 들은 다니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 한 명이 한스의 곁으로 다가와서 말문을 열었다.

“대단하군요. 연설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는데 기뻐하기는커녕 인상을 쓰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이유가 뭘까요?”

“천재의 에고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겠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다니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스가 존경의 감정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저 자가 살아 있는 한 제국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걸세.”

*

이주 후, 제국 국가 선전부.

국가 선전부 장관 쉴러 다이네스의 집무실.

똑똑─

서류를 검토하던 쉴러가 고개를 들었다.

문 위의 벽걸이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걸 보니 노크를 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공보 담당자 한스.

그에게 정오가 되면 자료를 취합하여 보고차 방문하라 했었기 때문이다.

“들어오게.”

쉴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린다.

한스는 품에 서류더미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끙끙거리며 다가오더니 쉴러의 책상 위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이게 대체 뭔가?”

당황한 쉴러의 말에 한스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다니엘 중령의 연설 이후 제국에 일어난 변화를 모두 조사한 자료입니다. 장관님이 취합해서 가져오라 하셨으니까요. 일단 가장 중요한 통계부터 보시겠습니까?”

한스가 서류더미 속에서 통계 자료를 하나 빼서 건네준다.

자료를 받은 쉴러는 통계를 확인했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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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찬반 여론 설문조사 통계》

표집단 : 제국 주요 도시 시민 1,000명

응답자 수 : 약 18,000명

질문 : 현재 제국이 진행중인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빈도 분석

1.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 14,166명(78.7%)

2. 전쟁을 멈춰야 한다 – 2,376명(13.2%)

3. 잘 모르겠다 / 무응답 – 1,458명(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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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주의자들의 절반 이상이 전쟁 옹호로 의견을 바꾸었다.

이제 반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고작 이 주.

다니엘 슈타이너가 연설을 하고 나서 이 주 만에 생긴 변화였다.

엄청난 반향에 얼떨떨하게 굳어 있던 쉴러가 고개를 들었다.

“이게 정말인가? 정말 이리도 많은 이들이 전향했다고?”

“예. 다니엘 중령의 총력전 연설에 감화된 이들이 마음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의 비율이 실시간으로 높아지고 있고요. 거기다…….”

한스가 서류를 여러개 빼서 쉴러에게 건넸다.

“이 서류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니엘 중령의 연설 이후 군 지원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이렇게 많은 인원을 한 번에 받을 수 없기에 지원자들의 입대 일시를 내후년까지 미룰 정도입니다.”

“허어…….”

“더해 군수 생산량이 급증했습니다. 아직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 추세로는 이전달에 비해 약 43%의 추가 생산량을 보일 거라더군요.”

쉴러가 두 눈을 깜빡이다가 질문했다.

“군수 생산량이? 어째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잔업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는데도 자진해서 일하겠다 나섰다고 합니다. 애국이 불러온 기적입니다. 또한 여러 기업에서 군수 산업에 대한 지원이 빗발친 덕분에…….”

한스가 서류를 하나 더 꺼내서 쉴러에게 건네주었다.

“대규모 군수 공장을 두 개 정도는 더 만들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되었습니다. 덕분에 주요 군수품이 늘어난 입대자에게 못 미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전쟁 채권은? 채권은 어느 정도 팔렸지?”

“채권은…….”

잠시 뜸을 들이던 한스가 흥분하며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팔리고 있습니다! 민간은 물론이고 기업에서도 사들이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 주 사이 벌써 270억에 달하는 채권이 팔렸습니다!”

270억이라면 기존 예상치인 85억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고작 이 주 사이에 목표치의 세 배를 팔았다는 소리다.

‘이 엄청난 쾌거가 다니엘 중령의 연설 한 번에 일어난 반향이라니…….’

잠시 멍하니 있던 쉴러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다니엘의 총력전 연설 이후로 제국은 격렬하게 태동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려 알을 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수많은 자료들 속에서 쉴러는 볼 수 있었다.

제국이 다시 한 번 위대한 국가로 거듭나는 미래를 말이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길을 느낀 쉴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과연. 다니엘 슈타이너라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를, 영원히 위대해질 대제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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