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총력전 선언에 군중들은 당황한 채 입을 떼지 못하였다.
다들 자리에서 굳어버린 채 ‘저 자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싶은 눈동자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반전주의자들 또한 항의하거나 비난할 생각조차 잊은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반면, 무대 뒤편에서 연설을 지켜보던 공보 담당자인 한스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채권 발행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연설은 국가 중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건 차기 황제가 될 셀비아가 선전부에게 주도적으로 내린 첫 번째 명령이었다.
덕분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의 정치인들을 물론이고 수많은 귀족들이 지금의 이 연설에 집중하고 있었다.
셀비아의 첫 발자취이니만큼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다니엘이 연설을 망친다면 선전부 또한 셀비아의 화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최악의 경우 보직 해임을 당할수도 있다고 생각한 한스가 급히 부하 직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봐! 지금 당장 방송국장에게 연락해라! 라디오 송출을 막아야 한다!”
“아, 예! 알겠습니다!”
다니엘의 총력전 연설이 제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선전부는 잘못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라디오 송출만이라도 금지시키는 것으로 최대한 위험을 상쇄시키려는 것이다.
한스의 부하 직원이 전화기를 통해 방송국장에게 연락을 하는 사이, 다니엘은 일만 명의 군중들 앞에서 결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금 국민 여러분들은 제가 왜 총력전을 선언하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국민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다. 왜 제국이 총력전에 임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진다.
다니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설을 망칠 셈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합국은 제국을 연일 비난하고 비방하며 연방국과 공화국의 참전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연방국과 공화국 또한 연합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이곳의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든다.
다니엘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연합국의 간사한 혀에 놀아난 연방국과 공화국이 제국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협상인가 항전인가!”
다니엘의 두 눈동자에 서린 의지가 뜨거운 불길처럼 일렁였다.
적어도,군중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반전주의자들은 말합니다! 협상을 해야 제국이 살 수 있다고! 연합국이 내미는 손을 잡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다니엘이 좌석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반전주의자 세력에게 시선을 돌린다.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맹신할 수 있습니까. 연합국과 손을 잡는 것이 과연 평화를 가져다줄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반전주의자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하였다는 게 옳을 것이다.
좌중을 휘어잡는 다니엘의 모습에 다들 기가 죽은 채 침묵했을 뿐이니까.
그들의 침묵을 한동안 응시하던 다니엘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국민 여러분! 저는 전장에 나가 싸우며 연합국의 실태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비열하며, 독선적이고, 과만하며 충동적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결코 평등이 아닙니다! 연합국은 제국의 굴종을 원하고 있습니다!”
공기를 떠돌던 웅성거림이 완전히 사라진다.
군중들은 이제 말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다니엘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었다.
“협상을 원한다며 다가온 연합국은 가장 먼저 우리의 총을 빼앗을 것입니다! 총을 빼앗은 다음에는 식량을 빼앗을 것이며, 식량 다음에는 농기구를, 농기구 다음에는 아이들을, 마침내 제국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말에 분노한 군중들 몇몇이 원성을 토해낸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연합국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필코 항전하여 저들의 음흉한 속내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제국의 국민들이여! 주저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니엘이 다시금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작금의 제국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걸 해냈습니다! 국민들이여! 고개를 들어 북부를 보십시오!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제국은 가장 격렬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겠습니까!”
군중들 속에서 ‘아니다!’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함성이 물결이 되어 흐르기 시작하자 무대 뒤편에 있던 한스가 멍하니 입을 벌린다.
속마음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먹힌다!’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가진 카리스마와 완벽한 발성이 좌중을 하나로 이끈다.
거기다 유창한 언변까지 더해지니 군중들은 점차 다니엘의 의견에 감화되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챈 한스는 방송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부하 직원을 불러세웠다.
“이봐! 방송국장에게 전해라. 라디오 송출을 계속하라고!”
한스와 마찬가지로 연설을 듣고 있었던 부하 직원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뒤편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오가는 것을 모른 채, 다니엘은 군중들을 돌아보며 자신 있게 외쳤다.
“우리는 승리했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입니다! 적이 제국을 압박하여 전방위적인 공격을 가한다고 해도 우리는 기필코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국의 위대함을 지구 반대편까지 알릴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함성이 일어난다.
그러나 반전주의자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점을 노리며 연설을 계속하였다.
“우리의 이러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몇몇 반전주의자들은 말합니다. 전쟁이 두렵지 않냐고 말입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솔직한 대답을 하자면 저는 두렵습니다. 전장에서 전투를 행할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피부를 서늘하게 만듭니다.”
다니엘이 연단을 붙잡았다.
“그러나!”
다니엘의 힘 있는 외침에 군중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굴종적인 협상 아래에서 국가를 잃는 것이 더욱 두렵습니다! 그러니 저는 전장에 나가는 것입니다! 목숨을 잃는 것은 하나를 잃는 것이지만, 국가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말소리에 호응하듯 군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일부는 미리 들고 온 제국의 국기를 머리 위로 흔들고 있을 정도였다.
이제 이곳에서 다니엘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반전주의자 무리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쟁 금지’라고 적힌 팻말을 내린 채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고 있을 뿐이었다.
고민이 깊은 얼굴들이다.
저들을 조금만 더 자극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다니엘이 연단을 쿵 내리쳤다.
“두렵지 않다면 일어날 것이며 알고 있다면 행동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들은 제국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임을 천명할 것입니다!”
다시금 환호성이 일어난다.
이제 군중들의 얼굴에는 모종의 희열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만 명의 군중들이 보내오는 눈빛 속에서 다니엘이 심호흡을 하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황제 폐하의 비호 아래에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여 말하겠습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다니엘의 중후한 말소리가 울린다.
덕분에 환호가 줄어들면서 모두가 다니엘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저, 다니엘 슈타이너는…… 아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 다니엘이 수많은 카메라의 섬광 속에서 외쳤다.
“우리는 총력전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수한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함성과 환호소리가 적절하게 섞이는 가운데 반전주의자들만이 침묵하였다.
그것이 다니엘은 기꺼웠다.
‘좋아.’
제국 국민의 과반은 반전주의자들이다.
저들이 총력전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한다면 다니엘의 계획이 완벽해진다.
‘뭐하고 있지? 손에 들고 있는 토마토라도 던져라.’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반전주의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다니엘은 토마토를 맞으며 우스꽝스럽게 퇴장할 준비를 하였다.
그리 넥타이의 위치를 바로잡고 있을 무렵에 반전주의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
당황스러웠던 찰나에 반전주의자들을 포함한 군중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기립한다.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군중들은 박수 갈채 속에서 함성을 내질렀다.
─ 우리는 총력전을 원한다!
─ 굴종적인 협상보다는 필연적인 전쟁을!
─ 황제 폐하를 위해! 위대한 제국을 위해!
합치되어 울리는 목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식은땀을 흘린 다니엘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반전주의자들이 팻말을 하나 둘 버린다.
그들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목청 높여 외쳤다.
─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웅 다니엘 슈타이너를 위해!
반전주의자들이 외친 목소리는 순식간에 전염되어 모든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다니엘 슈타이너! 다니엘 슈타이너! 다니엘 슈타이너!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바라보던 다니엘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시끄러울 정도로 함성이 높게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마른침을 삼킨 다니엘은 인지할 수 있었다.
‘망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