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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0 - Chapter 70

다음날.

참모 본부로 출근한 나는 개인 집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서 신문을 펼쳤다.

【특종! 황제 폐하께서 후계자를 선정하다!】

【차기 황제는 셀비아 전하…… 가까운 시일에 대리청정 시작】

【황녀 전하의 최측근은 다름 아닌 다니엘 슈타이너?】

마지막 기사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문을 몇 페이지 넘기자 내가 우려했던 기사가 나온다.

【국제연합 상임이사국 에드리아, 제국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다】

헤드라인 아래에는 익숙한 외모의 남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흑백 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다.

뱀을 닮은 희고 가는 눈동자와 수척한 몰골.

에드리아의 실권을 쥐고 있는 칼레드라 백작이었다.

장차 제국을 궁지로 몰아넣을 인물이기도 하였다.

사진 속의 칼레드라를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기사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칼레드라 백작은 제국이 엘드레시아 왕국을 사실상 괴뢰 국가로 만들었다며 지탄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내내 제국의 확장주의적 전쟁 양상을 비판하던 칼레드라 백작은 인근 국가들에게 제국에 맞서 궐기할 것을 호소하며……』

내용을 확인하고 신문을 접은 나는 낮게 침음을 흘렸다.

‘젠장.’

예상대로 칼레드라가 제국의 위험을 설파하며 중립국들에게 참전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제 열강에 속해 있는 소치알리스 공화국과 벨레카 연방국이 전쟁에 합류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제국이 유일무이한 패권국이 되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세계 대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소리다.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 제국이 과연 공화국, 연방국, 연합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지금 상황이 조금 좋게 풀렸다고는 해도 승산은 여전히 낮았다.

만약 제국이 패배한다면 승전국에서는 전범 재판을 열어 입맛대로 상대 군부 세력을 처형할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군복을 벗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국 지도부 핵심 인원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제국 내부 정치에도 휘말려 황녀의 최측근 소리를 듣고 있으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덕분에 망명 가능성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지고 말았다.

제국의 편에서 군사적인 활약은 물론 정치적인 활약까지 해버린 영관급 장교의 망명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국가는 없을 테니까.

만약 망명을 받아준다고 해도 다른 꿍꿍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제도에서의 내 위치가 안전한 것도 아니지…….’

참으로 안타깝게도, 제국 내부에서도 나를 탐탁찮게 보는 인물들이 많았다.

이미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군부 세력들이나 귀족과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생겨난 신진 세력으로 느껴질 테니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진 세력인데 개인 병력을 이용하여 정적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두려워하거나 경계할 것이 당연하였다.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황궁의 대전에서 내게 눈총을 보내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론 나는 억울할뿐이지만…….’

억울하다고 하여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당장 어제 황제만 하더라도 의심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압박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나를 괴롭힐까 싶어 전전긍긍하던 찰나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상념을 깨어지게 만든다.

루시인가? 고개를 든 내가 문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들어와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무실의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루시가 맞았다.

작전 참모실에서 업무 서류를 가지러 오겠다고 했었으니까.

문제는 루시의 뒤편에서 장신의 남자가 배경처럼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싶어서 시선을 올린 나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참모차장 각하!”

거의 반사적으로 경례를 올리자 루시가 옆으로 물러난다.

참모차장 준장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경례를 받아주고는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백안의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한 번 살펴본 세드릭이 나를 바라본다.

“집무실에 불필요한 물건이 없으니 깔끔하군. 청결 상태도 양호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모차장님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자네의 집무 환경을 살펴볼 겸 희소식을 전하러 왔네.”

희소식이라는 말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불안감은 곧 확신이 되었다.

세드릭이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으니까.

세드릭의 손 위에는 제국의 국기로 감싸여 있는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상자다.

“상부에서 자네의 특별 진급을 허가하였네.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이번에 자네가 내란범들을 검거한 이후로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더군.”

제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차기 황제가 될 셀비아가 모종의 압력을 넣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더해 북부에서 공훈을 쌓은 것도 있었으니 진급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특진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리로 오게. 내가 계급장을 달아주지.”

반쯤 체념한 내가 세드릭의 앞으로 가 섰다.

그러자 세드릭이 국기를 펼치고는 상자를 열어 중령 배지를 꺼낸다.

세드릭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제복에 부착되어 있던 소령 배지를 빼버리고는 중령 배지를 달아주었다.

중령이 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드릭이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진급 축하하네. 다니엘 슈타이너 중령.”

미사여구를 곁들이지 않은 덤덤한 축하 인사였다.

세드릭답다고 생각한 내가 약소한 긴장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앞으로도 제국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몸이라니?”

세드릭의 사백안이 한차례 깜빡인다.

“자네는 점령지인 노르디아를 안정시킨 것은 물론이고 왕국과의 협상을 완벽하게 성사시켰다. 더해 이번에는 내란을 획책하고 있는 무리까지 잡아들였지. 어디가 부족하단 말인가?”

다시 한번, 세드릭의 사백안이 느릿하게 깜빡인다.

“다니엘 슈타이너 중령. 제국을 대표하여 내가 대신 감사를 전하지. 또한 제국에 헌신하겠다는 자네 말을 새겨듣도록 하겠네.”

……뭔가 말을 잘못 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을 무렵에 입구쪽에 서 있던 루시가 말문을 열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다니엘 중령님.”

축하한다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이쪽을 놀리는 것처럼 다가온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세드릭을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참모차장 각하. 실은 방금 제가 저 스스로를 부족하다 말했던 이유는 제가 올린 공훈 중 일부는 부관의 공이 컸기 때문입니다.”

“부관의 공이 컸다?”

“예. 노르디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명령을 내린 게 저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명령을 확실하고 빠르게 이행하여 행정 체계를 구축한 것은 바로 제 부관입니다.”

다소 놀랍다는 얼굴을 한 세드릭이 뒤를 돌아본다.

“사실인가.”

세드릭의 물음에 루시는 당황하더니 급히 고개를 숙였다.

“참모차장 각하. 저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모든 공은 제 상관인 다니엘 중령에게 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루시는 제도 내부의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한 스파이로 이곳에 온 것이다.

오래 눌러앉을 생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대뜸 상부의 눈에 띄여 진급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제국을 벗어나는 것에 애로사항이 생길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자신에게는 공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정을 내가 이해해줄 필요는 없었다.

“사실입니다. 제 부관이 겸손한 성격이라 저리 부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참모 차장 각하께서는 제 공만 치하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관의 공도 되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잠시 생각하던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내게 거짓을 고할 리는 없겠지. 루시 소위가 노르디아 안정화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살펴본 후 특별 진급 심사를 진행하도록 하지.”

내가 깊은 감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루시 또한 더는 반박하지 못하며 진땀을 흘렸다.

그런 루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세드릭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몸을 돌린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업무에 매진하도록 하게.”

세드릭이 발걸음을 옮겨 집무실을 나가자 루시가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나를 돌아본다.

“소령…… 아니, 중령님. 저는 그저 주어진 명령을 이행했을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세드릭에게 전한 말을 철회해달라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림도 없었다.

미소를 지은 내가 루시에게 걸어갔다.

“부관. 명령을 올바르게 이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는가? 그런 점에서 자네가 특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

루시의 무감한 표정에 균열이 생긴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나는 그저 부하를 챙기려는 인자한 상관에 불과하였다.

“앞으로도 나는 부관의 활약을 이곳저곳에 자랑할 생각이네. 아무렴 자네 같은 유능한 부하를 뒀는데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쉽지 않지. 그렇지 않은가?”

“……중령님.”

“감격할 필요는 없다. 이건 유능한 부하를 둔 상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말이야.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네. 루시 소위. 아니, 곧 중위라고 불러야겠군.”

그리 말한 내가 미소를 유지한 채 루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가능하다면 우리가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갔으면 좋겠군.”

루시는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짧은 침묵 끝에 시선을 내린 루시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감사합니다. 중령님.”

전혀 감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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