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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9 - Chapter 69

베르트함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베르트함이 자신에게 강한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짧은 순간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리던 다니엘이 급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소인은 폐하께서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상대는 이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황제다.

단순 변심으로 인해 사람 한 명 죽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소리다.

모른다고 강경하게 나갔다가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정황상 저를 의심하는 것이야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만약 제가 폐하의 입장이었어도 저를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사조직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변명에 베르트함이 낮게 웃음을 흘린다.

베르트함이 손짓하자 근처에서 굳어 있던 시종이 탄환을 들고 가까이 다가온다.

탄환을 받은 베르트함은 여상한 손놀림으로 한 발씩 장전하였다.

“사조직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라.”

탄환을 모두 넣은 베르트함이 총열을 들어 장전을 마친다.

“이상하군. 그렇다면 자네가 새벽의 여명을 검거하기 전에 먼저 들이닥친 무장 집단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당한 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들 잘 훈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말이야.”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건 정말 저도 모르는 사항입니다.”

“모르겠다라.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 내가 의심암귀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베르트함은 평이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다니엘은 기겁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오해십니다! 제가 어찌 폐하께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저는 그저 모르는 사항을 모른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혹여…….”

마른침을 삼킨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제 휘하에 사조직 혹은 군벌이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저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군에서 물러나라는 말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군복을 벗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인 사건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진심을 담아 말한 것이었지만 베르트함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협박처럼 들려왔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제국의 전쟁 영웅인 자신을 핍박하고 모함하는 것이 ‘당신에게 이로울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황제란 언뜻 보면 법과 질서 위에 있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황제처럼 법과 질서를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도 없는 법이다.

황제가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그 법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신뢰도가 떨어지면 상급 관리들 또한 황제를 따라 법의 허점을 이용하려 들기 마련이다.

그건 곧 악습으로 번질 것이며 악습은 국가의 폐단으로 변모한다.

‘그러니…….’

다니엘은 지금 황제 앞에서 ‘선황들이 만든 제국의 지엄한 법도를 네 손으로 망칠 것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영악한 자식이 어떻게 벨바르 공작을 구워삶았는지 알 것 같군.’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잠시 침묵하던 베르트함이 다니엘을 내려다본다.

“다니엘 슈타이너. 고개를 들어라.”

다니엘이 고개를 들자 베르트함이 재차 말했다.

“맹세할 수 있겠는가. 지금 자네가 하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말이다.”

“그렇습니다.”

즉답이었다.

“신께서 굽어살피는 하늘 아래에서 황제 폐하께 진심을 담아 말씀드리건대, 제 휘하에는 사조직도 군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베르트함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다면 더는 추궁하지 않겠네.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게.”

고개를 끄덕인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베르트함이 손을 뒤로 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원반을 발사하라는 손짓이었다.

동시에 베르트함은 다니엘을 향해 장전된 더블 배럴 샷건을 던졌다.

다니엘이 당황하며 샷건을 받아들자 베르트함이 말했다.

“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사음이 들리며 원반 두 개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거의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은 다니엘은 하늘 높이 떠오른 원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쏘지는 않고 원반의 궤적을 계산하였다.

서로 다른 속도로 날아가던 원반 두 개가 겹치기 직전, 다니엘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화약이 터지며 날아간 산탄이 원반 두 개를 동시에 터트린다.

그 광경에 베르트함이 감탄을 흘렸다.

성공할 줄 몰랐던 다니엘 또한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샷건을 내린다.

박살난 채 바닥으로 떨어지는 원반 파편을 바라보던 베르트함이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대단한 사격 솜씨야. 이것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하고 넘어갈 셈인가.”

“폐하. 저는 그저…….”

“되었네.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아. 얼굴을 보아하니 피곤한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게. 내가 괜한 장난으로 자네를 곤란하게 만든 점은 사과하도록 하겠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시종이 다니엘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서 양손을 펼친다.

다니엘이 샷건을 건네주자 시종이 뒤로 물러난다.

정말 가라는 건가 싶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 베르트함이 손을 휘저었다.

그제야 다니엘이 베르트함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황제 폐하.”

그리 말한 다니엘이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베르트함이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무렵에 옆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일그러진 공간은 곧 사람의 형태를 취하며 일정한 색을 가지기 시작했다.

광학 위장이 완전히 해제되자 친위대장 요하네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베르트함은 요하네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문을 열었다.

“놈은 내 생각보다 더 영악한 놈이다. 예상은 했지만 포상을 준다는 말에 눈도 깜빡하지 않더군.”

다니엘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요하네스가 베르트함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황제 폐하. 다니엘이 만약 포상에 눈이 멀어 자신의 사조직에 대해 발설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자백을 했다면 군사 재판을 열어 놈에게 사형을 내렸을 것이다.”

일개 군인이 개인적으로 병사를 가지거나 군벌을 형성할 경우 그 주모자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것이 제국의 법률이었다.

다니엘이 자백을 하게 된다면 그건 곧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베르트함은 다니엘에게 아무런 문제 없이 사형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쟁 영웅에게 사형을 내린 황제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겠으나 베르트함은 그것까지 계산에 두고 있었다.

“사형을 내리되 집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내 딸아이가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나는 셀비아 때문에 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황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설마…….”

“때가 되면 내 딸아이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그럼 셀비아는 가장 먼저 다니엘을 면책하고 석방시키겠지. 그렇게 되면 다니엘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곰곰이 생각하던 요하네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 전하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겠군요. 황녀 전하께서는 손쉽게 다니엘 슈타이너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사조직을 운용했던 죄를 빌미로 삼아 그놈에게 목줄을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놈이 이빨을 드러내면 언제든지 낚아챌 수 있는 목줄을 말이야.”

황제 베르트함은 자신의 딸인 셀비아가 다니엘 슈타이너를 길들일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안배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황제가 준비한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친위대장은 보았나. 다니엘 슈타이너의 트랩 사격 말일세.”

“예. 보았습니다.”

베르트함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놈은 트랩 사격을 처음 하는 게 아니다. 안정된 자세하며 순간적으로 원반의 궤적을 계산하는 것을 볼 때 몇 번이나 이 놀이를 즐겼을 거야.”

“그런데 왜 해본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이 자리는 절대 친목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내명부장에게 부름받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테니까. 추궁을 위해 만든 자리라는 걸 알았을 테니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었겠지.”

다니엘은 트랩 사격에 영 솜씨가 없는 것을 드러내어 황제의 흥미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총을 쥐여줬을 때 당황한 나머지 다니엘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취했다.

그런 다니엘 슈타이너를 본 베르트함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다니엘 슈타이너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투성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짓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수 없지. 놈이 모든 증거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네.”

제국의 정보부가 알아내지 못하였다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그 사실이 베르트함의 얼굴에 주름을 더해준다.

“실로 치밀하면서도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모든 이를 기만하며 거짓을 몸에 두르고 있으나 빈틈이 없다. 황제인 나조차도 쉬이 건들 수 없는 놈이란 말이다.”

만약 베르트함에게 체력과 시간이 있었다면 그런 다니엘의 등장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놈의 마음을 얻어내기만 한다면 함께 천하를 평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베르트함은 늙고 병들었고 차기 황제가 될 셀비아는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

‘지금의 셀비아는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늑대를 결코 길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 제국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베르트함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다니엘 슈타이너가 셀비아에게 보인 충심이 거짓이 아님을 바랄 수밖에…….’

근심 어린 눈으로 다니엘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베르트함이 고개를 돌린다.

심호흡을 한 베르트함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친위대장. 다니엘 슈타이너가 제국에 가져올 계절이 과연 봄이겠는가.”

베르트함의 말뜻을 헤아린 요하네스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가 제국에 겨울을 몰고 오지 않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낮게 웃음을 흘린 베르트함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충견인 요하네스가 늑대의 횡포를 막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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