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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7 - Chapter 67

하르트만의 배려로 인해 곧장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한 나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 참모 본부로 출근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지만, 참모 본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좋았던 기분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나를 무슨 귀신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계급이 낮은 이들은 경직된 채 경례를 올리기 일쑤였고, 상급자들 또한 내가 경례를 올려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급히 경례를 받아줄 뿐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싶었던 나는 커피를 마시러 휴게실에 들렀다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인사참모들이 모여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거 들었나? 작전 참모 다니엘 슈타이너 말일세. 휴가를 나가는척하면서 황녀 전하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더군.”

“이번에 벨바르 공작의 저택에도 들렀다던데? 황녀 전하의 수석 경호를 맡고 있는 하르트만 중령이랑 함께 말이야.”

“전쟁 영웅이 되었으니 이제 정치에도 입문할 생각인 게지. 아무튼 다니엘 슈타이너에게 책 잡일 일은 하지 말자고. 우리까지 피해를 볼 순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말을 늘어놓던 인사 계획 부서 중령이 나를 발견하고는 말꼬리를 흐린다.

놀라 굳어버린 중령이 별안간 나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러더니 동료들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중령의 이상한 태도에, 이야기를 나누던 장교들이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들 중 가장 계급이 낮았던 소령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다니엘 소령.”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내가 말했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더해 남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날씨군요.”

내 말에 다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마시던 커피를 버리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 보니 긴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아. 나도 마침 부서장님을 만나야 해서 가봐야 할 것 같네.”

다들 변명을 한 마디씩 내뱉더니 줄지어 휴게실을 나간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모 본부에서 퍼지고 있는 이상한 소문들로 인해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나는 ‘황녀 전하의 최측근’으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정황만 놓고 보자면 나를 황녀의 최측근이라 생각하지 않는 쪽이 이상한 거였다.

다만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그저 휴가를 즐기고자 고향에 내려간 것이었는데, 거기서 의도치 않게 황자의 사조직을 검거한 이후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나를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일전에 황제 폐하와 대면했을 때 분명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주제에 독보적일 정도로 정치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 나를 좋게 보지는 않을 텐데.’

황제의 미움을 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은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다.

걱정이 앞섰지만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골몰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이었다.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내가 종이컵을 구겨서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후 서류 가방을 들고 휴게실을 나온 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의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자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 있는 루시가 보였다.

루시는 인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들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

“소령님. 오늘은 일찍 출근하셨군요.”

“왜인지 잠이 안 와서 말이지. 그보다 앞으로 보안국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해결하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집무 책상으로 걸어가려다가 멈칫하였다.

집무 책상 위에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는 상자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함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간 내가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이건 뭐지. 심히 의심스러운 상자인데.”

“애플 슈트루델입니다. 소령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응? 디저트 가게에서 이걸 팔던가? 남부 요리라서 이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닌 걸로 아는데.”

루시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직접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다고?”

루시는 무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암살인가?’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참모 본부에서…… 그것도 단둘만 있는 공간에서 나를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

이곳에서 나를 죽였다가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너무 쉬워진다.

루시도 그걸 모를 리는 없으니 암살을 위한 음식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순수한 호의로 내게 디저트를 만들어주었다는 소린데.’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잠시 가만히 있던 내가 곧 야트막한 깨달음을 얻었다.

‘설마 보안국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줬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실상을 말하자면 자기보신을 위해 행동했을 뿐인데, 루시에게 이상한 착각을 심어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리본을 풀자 상자는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열렸는데, 그 안에서 애플 슈트루델이 먹음직스러운 형태로 구워져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군.”

상자 안에 동봉되어 있는 식기를 들어 애플 슈트루델을 살짝 잘라서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입을 움직여 몇 번 씹던 나는 곧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단하군.”

사과의 상큼하고 시원한 맛에 시나몬의 따뜻하고 향긋한 맛이 더해진다.

그 곁에서 호두와 아몬드가 바삭한 식감을 자극하고, 설탕과 건포도가 ‘우리 여기 있어요!’라며 존재감을 은은하게 과시하고 있었다.

거기다 반죽이 알맞게 익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여태 애플 슈트루델을 꽤나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창업해도 될 정도야. 평소에도 요리를 즐기는 편인가?”

순수하게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는데, 루시는 칭찬을 들을 줄 몰랐다는 얼굴로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할 말을 고르는 것인지 잠시 침묵하던 루시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어제 요리책을 사서 연습한 것이…….”

루시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당신을 위해 요리를 연습했다’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동안 어쩔 줄 몰라하던 루시가 곧 침착함을 되찾고는 말했다.

“……어제 저를 위해 신경 써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리 말한 루시가 내게 고개를 꾸뻑 숙이고는 자리에 앉는다.

이후 무표정으로 업무에 들어갔지만 묘하게 귀가 붉어진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거기다…….’

요리를 연습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친 것인지 루시의 왼쪽 검지 손가락엔 밴드가 붙어져 있었다.

‘아마 사과를 자르다가 손이 베인 거겠지.’

상관을 위해 요리를 연습해서 대접하다니 과도하게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정말이지 모범적인 부관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저 부관이 내 목숨을 노리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아마 이 요리도 내 경계심을 풀어버리기 위해 만들어서 준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 생각하니 괜히 목이 막히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남은 음식은…….’

숙소로 돌아가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한편, 황궁 내부 접견실.

“지금…… 뭐라고 말했나?”

금발이 인상적인 황자 아르노의 눈동자가 한차례 떨린다.

정보부의 부국장인 펠리스턴이 전해준 소식이 너무나 터무니없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황자였지만, 펠리스턴은 침음을 흘리면서도 했던 말을 되풀이었다.

“……벨바르 공작이 후계자 싸움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외부의 출입을 일체 금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황자 아르노의 입장에서는 새벽의 여명이 검거당한 이상 벨바르의 지원이라도 있어야 후계자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벨바르가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대체 왜…….”

아르노의 중얼거림에 펠리스턴이 대답했다.

“정확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만,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과 대화를 가진 후 변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 슈타이너? 또 그 자식이?”

해탈한 듯 웃음을 흘리던 아르노가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그 개자식은 대체 왜 나를 사사건건 방해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처음 북부 암살 사건에서부터 지금까지.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남자는 아르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이제는 벨바르의 지지까지 철회시키는 것으로 아르노의 미래를 처참하게 박살 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동시에 속에서부터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부국장!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당장! 지금 당장 다니엘 슈타이너를 구속시킬 정보를 가져오도록 하시오! 놈이 사병을 이용했다는 증거를 찾아오란 말이오! 나를 위해…….”

아르노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평소라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부국장이 바보처럼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왜 그러는 건가 싶었던 무렵에 부국장이 죄송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전하. 저희도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예. 다니엘이 개인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부국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새벽의 여명을 일거에 처리할 정도라면 분명 대규모 조직일 겁니다. 그렇다면 분명 명령을 발신하고 수신하는 체계가 잡혀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부국장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인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은 남부에 내려가 있는 내내 조직의 그 누구와도 통신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의 여명을 공격한 조직 또한 어디로 흩어진 것인지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전하. 솔직히 말해 유령을 뒤쫓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지 저희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부국장의 목소리에 모종의 두려움이 담긴다.

덕분에 아연하고 있던 아르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대체…….”

요컨대 제국 정보부의 부국장도 흔적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작전을 수행한 자가 바로 다니엘 슈타이너란 소리였다.

그 사실에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차갑게 식어간다.

차갑게 식은 분노는 곧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변질되었다.

“……대체 다니엘 슈타이너는 뭐하는 놈이란 말이냐?”

황자의 질문에 부국장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부국장 또한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인물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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