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참모 본부.
다니엘 슈타이너의 개인 집무실.
사락─
다니엘이 없는 다니엘의 집무실에서 루시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서류를 검토하고 중요도에 따라서 정리하던 루시가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
복도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인가?’
오늘은 휴가를 반납하고 복귀하겠다던 다니엘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다니엘이 오면 더는 야근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기대감을 가지고 귀를 쫑긋거리던 루시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니엘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소리로 판단하건대, 발의 보폭이나 지면을 딛을 때 실리는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작전참모부장인 에른스트인가 싶었을 무렵에 집무실의 문이 열린다.
노크도 없이 열린 문 너머에서 군청색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천천히 들어온다.
그걸 본 루시의 손이 움찔 떨렸다.
저 중년의 남자는 루시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카트만 슐츠…….’
그는 보안국 소속 주임 경감이었다.
예전에 변장한 채로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음?”
비어있는 집무 책상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카트만이 고개를 돌린다.
루시와 눈이 마주치자 카트만은 잠시 침묵하다가 곧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다니엘 소령님의 부관이십니까?”
루시는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보안국 경찰인 카트만이 자신을 의심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때 분명…….’
가발과 선글라스로 외모를 가린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 또한 내지 않았다.
짧은 대화 정도는 괜찮을거라고 생각한 루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예. 무슨 볼일이 있기에 보안국에서 참모 본부까지 오신 겁니까.”
“으음.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만 쉽게 말하자면…….”
머리를 긁적이던 카트만이 별안간 루시를 응시하였다.
“스파이 색출입니다.”
일순간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돈다.
카트만의 졸린 눈에 서린 의심이 섬뜩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의심을 받는 것은 루시에게 있어 익숙한 일이기도 하였다.
루시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카트만의 말을 받아들였다.
“참모 본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루시의 말에 카트만은 헛웃음을 흘렸다.
보통은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같은 소리를 내뱉어 스스로를 옭아매기 마련인데, 루시는 참으로 영악하게도 카트만의 의심을 참모 본부 전체로 돌린 것이다.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 카트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참. 저도 참모 본부에서 제국을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니 다니엘 소령님께 의심 가는 정황이 포착되어서 말이지요.”
“의심 가는 정황이라면?”
“그게 말입니다. 예전에 다니엘 소령님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영광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다니엘 소령님과 동행한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는 척을 하던 카트만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아! 동부전선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다가 적병에 의해 눈에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은 볼 수 없었지만 갈색 머리칼이 참 예쁘신 분이었습니다.”
카트만이 루시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제 이상형에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동부전선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다가 적병에 의해 눈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웃음기를 지운 카트만이 손을 들어 손가락을 펼쳤다.
“다섯. 비교적 젊은 사람들 중 눈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살아계신 군의관은 다섯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이 중에서 갈색 머리가 몇 명이나 있을까.”
카트만이 손가락을 세 개 접는다.
“둘. 갈색 머리는 딱 두 분 있더군요. 그럼 눈에 상처를 입은 갈색 머리 군의관들 중 실어증에 걸려 말을 아예 못 하게 되신 분이 누구일까.”
카트만이 주먹을 쥐었다.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루시를 빤히 바라보던 카트만이 손을 내린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니엘 소령님이 말씀하신 군의관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니요? 그렇다면 거짓말이라는 소리가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하신 걸까.”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카트만이 눈을 치켜뜬다.
“혹시 그때 그 여자가 스파이라서 보안국 경찰인 저에게서 숨겨주었던 게 아닐까요.”
넘겨짚은 것치고정확한 추측이었지만 루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지금 제 상관이신 다니엘 소령님을 스파이와 내통한 혐의로 몰아가시려는 겁니까.”
루시가 강경하게 나오자 잠시 침묵하던 카트만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요. 아직까지는 제 바보 같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저도 망상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 하지만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로…….”
카트만이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든다.
선글라스 케이스였다.
카트만이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는 당시 루시가 썼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선글라스가 있었다.
“이걸 한 번 써주실 수 있겠습니까. 딱히 루시 소위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만약 그때 만났던 여자가 스파이가 확실하다면 참모 본부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선글라스를 한 번씩 쓰게 했으니 너도 써보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루시는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카트만이 건네는 선글라스를 들어서 쓰는 순간 의심이 증폭될 것이었으니까.
그저 비슷한 외모라고 둘러댈 수는 있겠지만, 이후 카트만의 집요한 수사가 시작되면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선글라스를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사면초가에 빠진 루시가 심호흡 끝에 선글라스를 향해 손을 뻗는다.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카트만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였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다니엘의 목소리가 루시의 손을 멈추게 만든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루시는 집무실의 입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니엘을 볼 수 있었다.
뜻밖의 등장에 경례할 생각도 잊은 루시가 가만히 눈을 깜빡인다.
카트만 또한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렸다가 다니엘을 발견하였다.
“아. 다니엘 소령님. 다름이 아니라…….”
태연하게 말하던 카트만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진다.
가까이 다가온 다니엘이 카트만을 잡아먹을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신의 키와 날카로운 눈빛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상당하였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하십시오.”
예기가 깃들어 있는 목소리가 카트만을 위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던 카트만이 입을 열었다.
“설명이라니요? 저는 그저 제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부에서 참모 본부 접근 권한을 내려주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내부 보안 감시 허가 영장은 받았습니까.”
카트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부 보안 감시 허가 영장은 접근 권한보다 위에 있는 서장이다.
제아무리 보안국이라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영장을 내어주지 않는다.
카트만이 침묵하고 있자 다니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영장도 없이 이곳에 들이닥친 겁니까. 더구나 제 부관을 곤란하게 만들었군요.”
“다니엘 소령님. 오해입니다. 거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국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저는 소령님의 부관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카트만 슐츠.”
카트만의 말을 끊은 다니엘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다시 말하지.”
눈이 마주친 카트만은 볼 수 있었다.
사나운 늑대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는 다니엘을 말이다.
“당장 여기서 꺼져라.”
식은땀이 흐른다.
모종의 공포감을 느낀 카트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카트만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니엘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벨바르 공작이 행동에 나설 것은 알았지만 벌써부터 사람을 보낼 줄이야.’
카트만에게 참모 본부의 접근 권한을 내어준 것은 아무리 봐도 벨바르였다.
‘참모 본부에 보안국 경찰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일단은 다행이다. 루시가 선글라스를 썼으면 일이 복잡하게 흘러갈뻔했어.’
루시가 스파이 혐의를 받으면 상관인 다니엘 또한 무사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스파이와 내통했다는 죄명을 받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카트만을 쫓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벨바르는 계속해서 나를 압박하겠지. 그렇다면…….’
더는 압박을 하지 못하게 싸울 의지 자체를 없애버려야 했다.
현재 다니엘에게는 그럴 힘과 능력이 있었다.
“부관.”
생각을 마친 다니엘이 루시를 돌아본다.
“나는 지금부터 황녀 전하를 만나고 올 테니 너는 참모 본부를 지키고 있어라. 또한 오늘 하루 보안국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알겠나.”
다니엘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루시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걸 본 다니엘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집무실을 나섰다.
다니엘이 나간 곳을 망연히 바라보던 루시가 긴 숨을 토해낸다.
‘어째서…….’
자신을 압박하던 보안국 경찰과 척을 진 다니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루시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니엘은 스파이 혐의를 받는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루시가 두 눈을 반개하며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
심장의 두근거림이 손끝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