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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2 - Chapter 62

상가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던 모르텐의 부하들을 검거한 직후.

다니엘은 휴가를 반납하고 제도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참모 본부에 전했다.

참모 본부에서는 다니엘의 의사를 존중하여 복귀행 열차를 알아봐 주었고,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다니엘은 고향을 떠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니엘? 이곳에 한 달은 머물 거라고 하지 않았나?”

수도원 입구 앞에서, 수도원장 히에로니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다니엘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제도로 올라가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진 것이다.

다니엘 또한 마음 같아서는 고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내란범을 붙잡은 이상 복귀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황자파 인사들은 지금쯤 나를 황녀파의 핵심 인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르텐의 부하들을 앞장서서 검거했다는 정황으로 볼 때 황자파 인사들의 오해를 사기에는 충분하였다.

오해를 받고 있는 입장인데 계속해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은 ‘나 좀 죽여주시오’라며 광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도에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물론 그 사실을 은사나 마찬가지인 수도원장님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미소를 지은 다니엘이 품 안에서 돈 봉투를 꺼내 건넨다.

“그보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제가 받은 봉급에 포상금을 조금 보태었습니다.”

봉투의 두께를 확인한 히에로니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다니엘! 휴가를 내어 수도원에 찾아와준것만 해도 하나님의 은혜나 다름이 없는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라니! 절대 못 받는다! 부디 너를 위해 쓰도록 해라.”

“수도원장님. 이 돈을 수도원에 기부하는 것이 저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나긋한 말투로 권했지만 히에로니는 강경하게 거부하였다.

“네 도움이 없어도 수도원은 아이들을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으니 이건 부디 너를 위해 쓰려무나. 안 그래도 고생하는 네게 돈까지 빼앗고 싶지는 않구나.”

“그렇습니까. 그럼 이 돈은 필요가 없는 것이니 불태우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면…….”

히에로니가 말꼬리를 흐렸다.

다니엘이 여상한 손길로 장교 코트 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불을 일으킨 것이다.

그 위로 돈 봉투를 올리는 다니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린다.

“수도원장님.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돈 봉투를 가져가지 않으시면 태워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히에로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저 많은 돈을 태워버릴까 싶었던 찰나에 다니엘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이윽고 봉투의 끝이 그을리기 시작하자 히에로니가 기겁하며 손을 뻗었다.

서둘러 봉투를 낚아챈 히에로니가 놀라며 소리쳤다.

“다니엘! 이 돈을 네게 준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을 셈이냐!?”

“짓밟을 셈이었습니다만, 수도원장님이 가져가셨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군요.”

“그게 무슨…… 아.”

그제야 다니엘에게 당했다고 생각한 히에로니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히에로니의 표정을 본 다니엘이 작게 키득거린다.

다니엘의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히에로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니엘. 이런 몹쓸 장난을 치면 재미있느냐.”

“죄송하지만 제게도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몹쓸 장난을 치지 않으면 수도원장님께서 그 돈을 받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하여간. 정말이지 너는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구나…….”

낮게 한숨을 내쉰 히에로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정말 네 마음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쓰도록 하마.”

“바라던 바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안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다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곧 열차 시간이라서 말입니다. 뒤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택시 캡 기사님도 기다리고 계시고요.”

다니엘의 말대로 시선을 돌린 히에로니는 멜빵 바지를 입은 동양인 남자가 차량에 기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히에로니와 눈이 마주친 동양인 남자는 머리에 쓰고 있던 페도라를 내리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걸 본 히에로니가 다소 의아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동양인 기사분이시구나. 그런데 동네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최근에 이곳에 취직을 한 사람인가? 아리송하게 눈을 깜빡이던 히에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시간이 촉박하다니 더는 붙잡으면 안 될 것 같구나. 다니엘. 우리는 이곳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테니 일이 힘들면 언제라도 찾아오거라.”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넨 다니엘이 몸을 돌렸다.

직후 다니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택시의 뒷좌석에 탑승한 다니엘이 운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까운 기차역으로 가주십시오.”

알겠다는 택시 기사의 대답을 들은 다니엘이 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머릿속에서는 현재 제도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모르텐이 붙잡혔다는 사실을 기민하게 받아들일 황자파 사람은 벨바르 공작이겠지.’

벨바르 공작은 제국의 유서 깊은 가문의 가주임과 동시에 궁정 장관이었다.

황실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벨바르 공작은 차기 황제로 적합한 자는 황자 전하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음지에서 황자를 위해 암약하던 모르텐이 황자의 왼팔이라면, 양지에서 황자를 지지하는 벨바르 공작은 황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망할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황자의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서도 황녀와 대척점에 선 인물이니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이해가 간다.

그래서 다니엘은 일단 모르텐과 그 잔당들을 검거하면서 내란 서류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황녀와 그 최측근들에게만 공개하였다.

모르텐이 붙잡히기 전에 관련 서류들을 모두 소각하고 입을 닫았을 거라는 착각을 벨바르 공작에게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시간 벌기인 셈이었다.

‘더해 이 사실을 언론에 발설하는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둬야겠어.’

생각 없이 정보를 흩뿌린다면 유용한 협상 카드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정보 공개가 자칫 여론전으로 흘러가면 적들의 결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정보를 한정적으로 이용해서 내부로부터 분열을 초래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그래야만 이 난잡하고 폭력적인 후계자 싸움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주행하는 택시 안에서 머리를 굴리던 다니엘은 별안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을 조르고 있는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창밖을 바라본 다니엘의 얼굴이 시름에 잠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고향에서 수도원 아이들과 놀아주며 잭의 레스토랑과 식사를 하다가 느긋하게 산책이라도 즐길 셈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반강제적으로 황녀파에 속하게 돼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망할 놈들이 황자의 비밀 조직을 소탕해놓고 나한테 책임만 떠넘긴 거지?’

이해가 안 되었던 다니엘이 두 눈을 좁히며 이를 꽉 깨물고 있자, 백미러를 통해 다니엘의 모습을 확인한 택시 기사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희열에 잠긴 표정을 보니 우리의 선물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

다니엘 슈타이너는 앞으로 더 높은 곳에 올라가리라.

흑조를 이끄는 선지자로서 말이다.

*

한편, 벨바르 공작의 저택.

“모르텐이 붙잡혔다고?”

남부에서 올라온 소식을 들은 벨바르가 아연하며 입을 벌린다.

지난 3년간 그림자도 밟히지 않고 활동해온 조직이 하루아침에 소탕당했다고 하니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기밀은? 새벽의 여명이 황자 전하의 편에 서서 활동했다는 것이 들켰나?”

벨바르의 물음에 그의 심복이자 정보원인 바송이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수사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구나. 하지만 밝혀지는 것도 시간 문제일 터. 그런데 대체 누가 모르텐을 붙잡았다는 것인가?”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입니다.”

다니엘 슈타이너.

그 이름을 듣자마자 벨바르는 현기증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망할 놈. 기어이 녀석이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전쟁 영웅으로 위신이 높아진 인물이 정치에도 발을 걸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니엘 또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황녀를 황제로 만들고자 참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일반적인 전쟁 영웅들과 궤가 달랐다.

‘모르텐을 검거하기 직전까지 정치에 관심 없는 척을 하다니…….’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제한하고 각종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던 게 다니엘이었다.

이번에는 후계자 싸움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긴 휴가를 내기에, 벨바르는 다니엘이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기만 전략이었다니……!’

모두를 철저하게 속인 후 새벽의 여명을 검거한 솜씨를 볼 때 꽤나 오래 동안 이 일을 준비했을 것이다.

다니엘 슈타이너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울분이 터진다.

그러나 아무리 영민하고 치밀한 놈이라고 해도 빈틈은 있는 법이다.

“카트만 슐츠…….”

실은 얼마 전 보안국 주임 경감인 카트만 슐츠가 저택에 찾아왔었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스파이와 내통하고 있는 것 같다며 말이다.

그러나 말을 들어보면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기에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쫓아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상황이 급박하니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보안국에 연락해서 카트만 슐츠에게 전해라. 궁정 장관인 내가 네놈의 뒤를 봐줄테니 다니엘 슈타이너가 스파이와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를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벨바르의 말을 들은 심복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을 나선다.

심복이 방을 나서는 것을 본 벨바르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챙그랑!

깨진 잔에서 레드 와인이 피처럼 번져나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벨바르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고아에 불과한 네놈이 감히 이 제국을 농단하려 드는가!’

벨바르가 생각하기에 다니엘은 황녀를 황제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직감이 말한다.

그의 흑심은 보다 깊고 어두울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다만 다니엘이 가진 어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벨바르는 두려웠다.

손을 부르르 떨던 벨바르가 두려움을 애써 떨쳐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선조들이 지켜오신 이 제국을…….’

절대 네놈 같은 부랑아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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