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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8 - Chapter 58

다음날 이른 저녁.

수도원의 식당에서, 원장 히에로니는 기부를 하러 온 시의원 및 부호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본래라면 다니엘을 마중이라도 나갔겠지만, 공교롭게도 기부 행사와 다니엘의 방문 일자가 겹치는 터라 손님 접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니엘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도원장인 히에로니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고아들을 먹여살릴 돈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고아들에 대한 기부금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판국이라, 히에로니는 어떻게든 시의원들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고아들이 늘어만 가는데 정작 고아들을 향한 기부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게 참 아니러니합니다. 전쟁 특수를 본 기업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시의원이 점잔을 떨며 하는 말에 히에로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레덴 시의원님은 참으로 감사하신 분입니다. 고아들을 위해 저희 수도원에 거금을 쾌척하시겠다고 나섰으니까요. 하느님의 은총이 따로 없습니다.”

“거금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앞으로 저희 시의회에서 고아원에 들어가는 예산을 삭감할지도 모릅니다.”

애써 비위를 맞춰주고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히에로니는 이해하였다.

시의회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예산이 한정적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기부금을 삭감한다고 하여 나쁜놈이라 매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산을 삭감한다고 하시면 어느 정도로…….”

히에로니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 식당의 문이 열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히에로니와 시의원은 장교의 제복을 입은 군인을 볼 수 있었다.

또각─

장교의 구둣발 소리가 식당 안에 공허하게 울린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장교의 모습에 모두가 위축당한 채 굳어 있었다.

히에로니 또한 제국의 장교가 왜 이곳에 온 것인지 몰라 의아해하고 있을 찰나였다.

“수도원장님.”

중저음의 목소리를 내뱉은 장교가 쓰고 있던 제복모를 벗었다.

그제야 히에로니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

“다니엘!”

반가운 마음에 다니엘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히에로니가 멈칫한다.

다니엘의 견장에 새겨진 소령 계급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히에로니를 향해 다니엘이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너는 별일이 있었던 것 같구나. 소령이라니?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네가 그 제국의 영웅이라고?”

히에로니가 얼떨떨하게 말을 건네자 다니엘이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본의 아니게 여러 일들을 겪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다니엘과 시선이 마주친 시의원이 저도 모르게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시, 시의원 레덴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또한 영광입니다. 시의원이라고 하시면 우리 수도원에 기부금을 전달해주시는 분이겠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에…….”

시의원의 대답을 들은 다니엘이 미소를 유지하며 히에로니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아이들은요?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 그래. 다들 저곳에 모여 있단다.”

다니엘이 시선을 돌리자 한 쪽 구석에 서서 멀뚱히 시선을 던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멜빵바지를 입고 목에는 나비넥타이를, 여자들은 흰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꽃 장식 핀을 꼽고 있었다.

‘변한 게 없구나.’

기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여주기식으로 아이들에게 정갈한 옷을 입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낮게 웃음을 흘린 다니엘이 히에로니를 향해 말했다.

“그럼 저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겠습니다.”

그리 말한 다니엘이 아이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의원은 긴장한 듯 괜히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다니엘 소령님이 이 수도원 출신이었군요. 미리 말씀을 해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수도원장님. 말을 번복해서 죄송하지만 기부금에 대한 시의회 예산 삭감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예?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말고. 황제 폐하께 직접 황금 십자 훈장을 수여 받은 제국의 전쟁 영웅이 ‘수도원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데 거기다 대고 예산 삭감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시의원의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아이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 다니엘이 근엄하게 뒷짐을 지었다.

“귀관들은 들어라. 본인은 제국 참모 본부 소속 작전 참모 소령 다니엘 슈타이너라고 한다. 내가 왜 이곳에 온 건지 아는 자가 있나.”

아이들은 겁을 먹은 채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다니엘이 곧 웃음을 흘리며 양손을 뻗었다.

“바로 너희들과 놀아주기 위함이다! 엘라! 루카! 멜리! 모두들 많이 컸구나!”

그제야 다니엘이 장난을 쳤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다니엘에게 뛰어들었다.

몇몇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니엘에게 안기려고 드는 통에 위험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다칠까 싶어 다니엘이 한 쪽 무릎을 꿇자 엘라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말했다.

“다니엘 오빠! 온다면 온다고 말하지 그랬어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 수도원장님께 편지를 썼는데 너희들한테 말하지 않았나?”

“안 했어! 수도원장님은 괴팍하니까!”

개구쟁이 루카가 끼어들었다.

주먹코인 루카는 흥분한 얼굴로 목청을 높였다.

“형! 그런데 형 진짜 소령이야? 그거 엄청 높은 계급 아니야? 이제 형 밑에 총 쏘는 군인들 수천 명이 따르는 거야?”

“그렇게까지 높은 계급은 아니야. 내가 지휘할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수백 명이니까.”

“수백 명도 엄청나! 그런데 형 그거 진짜야? 멜리가 아까 말했는데, 형이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이곳에 온 거라던데!?”

비밀 임무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에서 별빛이 감돈다.

그 눈빛들이 당황스러운 다니엘이었지만 어울려주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한 달 외출 2번을 제외하면 수도원에서 갇혀지내다시피 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니 조금 거짓말을 해서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배려였다.

“이런. 들켜버리고 말았구나. 사실 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이곳에 온 게 맞아.”

루카가 입을 틀어막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다른 아이들 또한 괜히 주변 눈치를 보면서 다니엘의 말에 집중하였다.

“잘 들어. 나는 황실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 불순한 세력들이 이곳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지. 내 목적은 그들을 일격에 소탕하는 거야.”

“……저, 정말이에요?”

어른스러운 엘라 또한 거짓말에 깜빡 속아넘어가서 동조하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은 평소에는 상가의 직원들처럼 활동하지만 그 아래 지하에서는 여러 정보들을 수집하며 암약을 벌이고 있지. 그 수가 자그마치…….”

“자그마치?”

몇 명으로 할까.

너무 적으면 김이 샐 것 같았던 다니엘이 다섯 손가락을 폈다.

“대략 오십 명에 달한다.”

허억! 아이들이 일제히 기겁하며 웅성거린다.

아이들 중 몇몇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기에 다니엘이 수습하고자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모두 처리할 테니까. 알겠나?”

다니엘을 믿은 아이들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들이 귀여웠던 다니엘은 웃음을 흘리다 말고 멈칫하였다.

어디선가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기부 행사에 참석한 부호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친다.

부호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곧 다른 곳을 향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뭐지…….’

기분탓인가?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찰나에 루카가 팔을 잡아당긴다.

“형! 형 진짜 엄청 멋있어! 나도 형처럼 될래! 형처럼 멋있는 군인이 되고 싶어! 그래서 형을 도와서 내가-”

“안 돼.”

루카의 말을 끊은 다니엘이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며 진중하게 말했다.

“경고하는데, 군인은 절대 하지 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다.

*

상가 지하, 새벽의 여명 수뇌부.

“각하! 최고 참모 각하!”

다니엘을 감시하라고 보냈던 정보원이 지하로 들어오자마자 모르텐을 찾았다.

즉시 모르텐의 집무실에 들이닥친 정보원이 호흡을 갈무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했다.

“각하! 다니엘 슈타이너가……!”

부호로 변장한 채 숨을 헐떡이는 부하의 모습이 마뜩잖았던 모르텐이 인상을 찌푸렸다.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말해라.”

고개를 끄덕인 정보원이 심호흡을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황녀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것은 물론이고 수뇌부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집무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모르텐의 한 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고 정보원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알고 있다고? 이곳을?”

“예. 어린애들과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상가 지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것을 언급하더니 대략적인 인원까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보원은 자신을 흘겨보던 다니엘의 서늘한 시선을 떠올리며 말했다.

“……말을 끝내고 나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저를 노려보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보원의 말을 들은 모르텐이 침음하며 이를 갈았다.

위치와 인원수를 대략적으로 맞춘 것은 우연이라 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인원을 특정한 것까지 합쳐지면 더는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었다.

‘거기다…….’

다니엘은 새벽의 여명 정보원이 자신을 감시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모든 정보를 털어놓았다.

모르텐에 보기에 그건 어린애와 장난을 치는 척 하면서 새벽의 여명을 협박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젠장. 다니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거다.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을 몰살시킬 수 있지만 그러지 않겠다고 말이다.”

“……왜 그런 겁니까?”

“이유는 잘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니엘이 우리와 대화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겠지.”

거절할 수 없으니 외통수였다.

현기증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심호흡을 하던 모르텐은 두려움을 애써 이겨내며 고개를 들었다.

“좋다.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면 받아들여야겠지. 내가 직접 나서서 다니엘의 의중을 떠보겠다.”

다니엘의 꿍꿍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조직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모르텐은 다니엘의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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