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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6 - Chapter 56

하루가 지나고, 이른 아침에 되어 참모 본부로 출근한 내가 손을 들어 이마를 붙잡았다.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탓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장교 클럽에 들어갔더니 바텐더가 나를 알아본 것이 화근이었다.

내게 미소를 지어준 바텐더가 ‘제국의 영웅이신 다니엘 소령님께는 오늘 하루간 술을 공짜로 드리겠습니다!’라는 소리를 해버린 탓에 주량 이상으로 마시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들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숙소의 침대 위였다.

문제는 어떻게 숙소로 돌아온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제 발로 걸어서 갔을 리는 없을 텐데. 누가 날 도와줬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최악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낮게 한숨을 내쉰 내가 개인 집무실에 도착해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정갈한 복장의 루시가 먼저 와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루시는 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님, 오셨습니까.”

……원래 내 풀네임을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딱딱해진 태도였다.

잠시 멋쩍게 있던 내가 경례를 받아주고는 집무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자 루시가 내게로 다가온다.

손에는 제국 일보를 든 채였다.

“아. 고맙…….”

신문을 건네받으려는데 왜인지 루시가 손에 힘을 빼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들자 루시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님. 술은 기호품입니다. 개인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뭐든지 과다하면 몸에 좋지 않은 법입니다. 특히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제국의 장교로서 모범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말이 없어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건…….’

설마 루시가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준 장본인인가? 의아스러웠던 내가 루시를 떠보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인사불성이 되기라도 했다는 건가?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루시의 어깨가 흠칫 떨린다.

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덤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말을 전한 루시가 신문을 잡던 손을 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책상 앞에 착석한 루시는 평소처럼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왜인지 모르게 귀가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신문을 펼쳤다.

신문을 펼치자마자 가장 큰 지면에 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정확히는 황제 폐하를 만나고 나서 황궁을 떠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제국의 영웅,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 국선장에 이어 황금 십자 훈장을 수여받다!』

기사의 제목을 보니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용을 보지도 않고 넘긴 나는 다른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전장에 나가 있느라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참에 대략적이나마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 여러 기사들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던 나는 특정 대목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타이덴 바르칼로이 편집장,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타이덴 바르칼로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는 기자였다.

황녀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주로 싣는 편집장이었으니까.

그의 신문 편집 방침이나 정치적 입장 또한 황녀를 지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표적인 황녀파 인물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타이덴이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지금 이 시국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황자측에서 손을 썼다고 보는 편이 객관적으로 옳았다.

‘그렇다는 건…….’

후계자 싸움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황녀 또한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반격을 가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물밑에서부터 피바람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제도에 있는 이상 그 피바람을 나 또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침음을 흘리며 책상을 툭툭 두드리던 내가 신문을 접었다.

어떻게 해야 다가오는 시대의 파도 속에서 온전히 몸을 지킬 수 있을까.

짧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도망가자.’

제도에 있는 이상 피바람을 피해갈 수 없다면 제도를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마침 연이은 특진으로 인해 포상 휴가가 쌓여 있으니 문제도 없었다.

‘제국의 포상 휴가 최장 기간은 30일이니까…….’

지금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면 서열 정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다 휴가를 가는 것으로 ‘나는 너희들의 후계자 다툼에 전혀 관심이 없다’라는 의견도 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휴가를 떠나면 루시가 야근에 시달리며 업무를 도맡아서 해야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내 목숨을 노리는 스파이의 사정을 봐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결심을 마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장난기가 동해서 루시를 한 번 돌아보았다.

“부관. 미리 사과하도록 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곧 알게 될 거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루시를 인자하게 바라보던 내가 집무실을 나섰다.

직후 참모실에 입장한 내가 작전참모부장실로 들어가 에른스트에게 경례를 올렸다.

경례를 받아준 에른스트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 다니엘 소령 아닌가. 참모부장실에는 무슨 일이지? 업무라면 개인 집무실에서 봐도 된다고 했다만?”

“부장님. 업무 관련 이야기를 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응? 아아. 그렇다면 진급에 관해서 논의하고자 하는 건가. 그 건이라면 이미 상부에서 논의중일세.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찾아온 거지? 에른스트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내가 말했다.

“부장님. 저는 휴가를 쓰고 싶습니다.”

에른스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라. 그래. 아무리 자네라도 휴식이 필요하겠지. 얼마나 쓸 생각인가?”

“한 달입니다.”

에른스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일주일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대뜸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나오니 당황한 것이다.

“……한 달? 진심인가?”

“예. 포상 휴가를 사용하면 장기 휴가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닌데…… 으음. 알겠네. 자네가 쓰겠다는데 내가 토를 달 수는 없는 입장이지. 상부에 말을 전하도록 하겠네.”

혹시 막아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자 에른스트가 다소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꽤나 긴 휴가를 신청하는구먼. 휴식을 취할 곳은 따로 정해놓았나?”

휴식을 취할 곳이라.

딱히 정해놓은 곳은 없지만 들리고 싶은 곳은 있었다.

“고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제국 남부 베타르겐 남작령 피안마리 마을.

내가 태어난 고향이자, 나의 은사님이신 수도원장님이 계신 곳이다.

*

제국 남부 베타르겐 남작령.

황자 휘하 비밀 조직 ‘새벽의 여명’ 수뇌부.

타다닥─

지하의 어두운 조명 속에서, 문자를 송수신하는 텔렉스(Telex)에서 기계적이며 반복적인 클릭음이 울린다.

이는 새벽의 여명 수뇌부가 제도에 점조직처럼 뿌려놓은 무력 집단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식 중 하나였다.

그들을 총괄하는 수장, 조직의 최고 참모로 불리는 모르텐 블랙모어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정보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들 중 혹여 황녀파 인물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면 조직은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시국에 의심을 가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정보원들을 훑어보던 모르텐이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황자를 황제의 자리에 앉혀야 한다.’

황자의 편에 서기로 한 이상 모르텐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황자가 아닌 황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모르텐은 물론이고 조직의 전체가 숙청을 당할 테니까.

이번에 황녀의 편에 서서 목청을 높이던 편집장 타이덴 바로칼로이를 암살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행한 일이었다.

‘황녀에게 긍정적인 여론이 흐르게 할 수는 없지.’

여론은 시민의 바람이며, 시민의 바람은 곧 후계자를 최종적으로 선택할 황제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현 황제는 선진 군주라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을 연달아 시행한 별종이었다.

민생에 관심이 많은 자이니 분명 후계자를 선택할 때 여론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르텐은 시민들을 선동하고 상대편 목소리를 죽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무능한 황자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현재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황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슬슬 반격에 나설 것이다.

황녀가 가진 카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에 정보원 한 명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의아했던 모르텐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정보원은 자기가 전달 받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는 모르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고 참모 각하. 그것이…… 다니엘 슈타이너가 휴가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일반적이지 않게 한 달이나 말입니다.”

“휴가를 신청할 수도 있지. 그게 왜?”

“다니엘 슈타이너가 휴가를 신청하고 방문하기로 한 곳이…….”

침을 꿀꺽 삼킨 정보원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바로 저희가 있는 제국 남부 베타르겐 남작령입니다.”

일순간, 텔렉스의 타자기를 두드리던 손들이 모두 멈춘다.

모르텐 또한 숨을 멈춘 채 눈동자를 떨었다.

‘설마…… 황녀의 편에 서서 우리를 섬멸하러 오는 것인가?’

모르텐이 침음하는 사이에 무거운 분위기가 수뇌부를 짓누른다.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침묵을 고수하던 모르텐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베타르겐 남작령은 다니엘 슈타이너의 고향이다. 정말 단순히 휴가를 즐기러 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직 우리의 소재지를 파악하진 못 했을 것이다. 소재지를 파악했다면 한 달이나 휴가를 내진 않았겠지.”

정보원들을 둘러본 모르텐이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다니엘 슈타이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만약 그가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라도 언제든지 대처할 수 있게 말이다. 알겠나!”

예! 힘차게 대답한 정보원들이 다시금 타자기를 두드린다.

정보원들을 독려하는 것에 성공한 모르텐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누구인가? 계산적이며 냉철한데다 왕국의 외무대신에게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까지 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고작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온다고?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곳에 새벽의 여명 수뇌부가 있다는 것을 다니엘에게 들켰다는 것이라 보는 것이 맞았다.

‘다니엘 슈타이너가 우리를 노리고 온 게 맞다면…….’

감히 대적하기도 전에 박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애써 잠재운 모르텐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신이시여.’

부디 악마에게 대항하여 이길 힘을 저희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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