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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 - Chapter 47

다니엘의 대답을 들은 에르빈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고? 이토록 완벽하게 점령지를 구축해놓고서?’

겸손이 지나친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해 지금 이곳은 왕국의 영토가 아니라 제국의 영토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주둔군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지 않는 다니엘을 보고 있으려니 대단하다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허나 에르빈의 속마음을 모르는 다니엘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대령님. 날이 춥습니다.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아. 그러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에르빈이 다니엘을 따라 사령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내부에 마련된 응접실로 에르빈을 안내한 다니엘은 주둔지 사령관 자리를 인계하기 위해 여태 행했던 도시 계획들을 늘어놓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루시가 관련 서류들을 에르빈에게 건네주었고, 프리엔이 고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에르빈에게 대령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서류를 검토하며 커피를 마시던 에르빈은 헛웃음을 흘렸다.

지적할 곳이 없을 정도로 다니엘이 완벽하게 주둔지 사령관 역할을 해내었기 때문이다.

“훌륭하군. 점수를 줄 수 있으면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야. 불만이 하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정도겠군. 현상 유지만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하니까 말이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 자네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일을 잘해주었어. 내가 이 이야기를 참모 본부에 꼭 전하도록 하겠네.”

고과가 더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니엘이었으나 상관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니엘이 말했다.

“대령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보다 인수인계가 모두 완료된 것 같으니 저는 슬슬 제도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제도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작전 지원을 오래 나와 있었으니까요. 알다시피 북부는 춥기도 하고 음식도 제 입맛에 안 맞아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너스레에 에르빈이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타지의 음식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지. 나도 동부 전선에서 지낼 때 음식을 먹는 게 고역으로 느껴지곤 하였네.”

“……이거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대령님이 포화가 빗발치는 전선에서 드신 음식에 비교하면 저는 꽤나 호화로운 식사를 한 것 같으니까요.”

“괜찮네 괜찮아. 자네를 주눅들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니니까. 그저 경험담일 뿐일세. 그보다 제도로 돌아가고 싶은 자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한 말이라니? 다니엘이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자 에르빈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참모 본부에서 자네에게 전하라고 한 작전 명령서일세.”

덕분에 다니엘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임무가 끝나서 돌아갈 줄 알았더니 새로운 작전 명령서?

‘지금 대체 뭐하자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명령인 이상 받들어야만 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를 건네받은 다니엘이 붉은 끈을 풀고 종이를 펼쳐보았다.

───────────

《제국 참모 본부》

명령서 제 D-513호

일자 : 1944년 08월 14일

과제 : 참모 본부 직할 부대의 전선 이동

• 명령 사항

1. 참모 본부 직할 부대를 운용중인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은 노르디아 주둔지에서 차량 이동이 가능할 정도의 중대 인원을 차출하라.

2. 차출한 중대 인원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한 후 현재 북부 최전선에 위치한 제 3군단의 사령부로 1944년 08월 21일 16:00시간까지 도달하라.

3. 군단 사령부에 도달하였다면 대기 상태로 명령을 기다릴 것. 추후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것을 권고한다.

본 명령서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임무를 수행할 것을 명령한다.

제국 참모 본부.

참모차장 준장 세드릭 벤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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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서를 다 읽은 다니엘이 손을 들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참모차장님. 제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도로 돌아가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다니엘의 소소한 바람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에르빈의 질 나쁜 장난이었으면 좋겠지만 명령서에는 참모차장의 직인까지 찍혀 있었다.

고로 이 명령서는 어떻게 봐도 위조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명령이 떨어졌으니 가기는 가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도달 일시까지 명확하게 적혀 있어서 늦장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명령서만 봤을 때는 단순한 병력 지원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군단에 합류한 후 시간만 죽이고 있으면 된다는 소리였다.

‘특수 작전이라면 모를까 참모 본부 직할 부대를 전선에 투입하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특수 작전이라면 고생길이 훤하였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현재 북진하던 제국군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 상태에서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왕국에 특수 작전을?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부대 대기’상태로 군단에 체류하다가 왕국과의 전쟁이 끝나면 제도에 복귀할 것이 명확해보였다.

그저 제도로 돌아가는 시간이 몇 주 정도 늦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지는 다니엘이었다.

*

제 3군단 사령부.

군단장 집무실.

“흠…….”

중장 카를페터 크라우가 벽에 걸린 전략 지도와 작전판을 바라보며 두 눈을 좁혔다.

‘전선을 물리고 수도 방위에 모든 병력을 투입했다라.’

언뜻 보면 왕국군이 겁을 먹고 도망친 것으로 보였지만, 카를페터가 보기에는 꽤나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왕국군이 전선을 물렸다고 해서 제국군이 무작정 진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보급과 병참이 따라와주질 못한다.’

군단이 하루마다 소모하는 보급품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보급품을 제때 전달하지 못하면 군단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물론이고 작전 지휘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보급선이 제대로 활성화되기 전까지 제국군은 진군을 할 수가 없었다.

왕국의 영토를 절반 이상 잡아먹은 지금도 보급선이 이리저리 꼬이고 있었는데, 적이 전선을 물렸다고 그대로 따라가는 순간 보급이 끊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지금 제국군은 반 강제적으로 소강 상태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서 왕국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겠지.’

어쩌면 동맹을 맺은 연합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연합국이 지원을 나온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운 좋게 연합국이 지원을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골치가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제국군이 보급선을 확보하고 진격에 나서면 왕국군은 이미 부대 재정비를 마쳤을 것이다.

‘분명 맹렬하게 저항하겠지.’

그렇다고 제국군이 패배하지는 않을 테지만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만 한다.

최소한 수천명에서 최대 수만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제국의 국력이 약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였기에 참모 본부 및 카를페터는 종전 협상을 맺으려고 하였다.

왕국측에서도 이에 응하여 외무대신을 보냈으나 벌써 2번이나 결렬이 나고 말았다.

제국의 요구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여 군단장 카를페터는 황제 폐하께 협상의 조건을 완화시켜달라 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이에나처럼 제국의 옆구리를 뜯어먹으려고 한 비열한 왕국에게 자비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수도를 함락시키기 위한 총력전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부전선을 틀어막는 것에도 국력이 낭비되고 있는데 왕국에게 철퇴를 가하겠다고 총력전을 선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카를페터의 고민이 날로 깊어지는 가운데 참모 본부에서는 사람 한 명을 추천했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

노르디아에서 엄청난 군공을 올린 인재를 군단에 올려보내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건 곧…….’

종전 협상의 책임자로 다니엘 슈타이너를 써보라고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참모 본부의 의중을 이해한 카를페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렸었다.

수많은 군사 고문들의 도움을 받아 나섰는데도 결렬당한 협상이다.

제아무리 군공을 많이 쌓았다고 한들 이제 겨우 소령에 불과한 장교를 협상 책임자 자리에 올린다고 대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참모 본부, 그것도 참모차장인 준장 세드릭 벤델이 추천한 인재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애초에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니만큼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협상이 될 텐데.’

과연 다니엘 슈타이너에게 명운을 맡겨도 될 것인가.

두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던 카를페터가 천천히 눈을 뜬다.

기행에 가까운 결단을 내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니엘 슈타이너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여태 수많은 작전을 고안하여 제국군을 승리로 이끈 세드릭 벤델의 총명함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세드릭. 네가 건네는 조커 카드를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다니엘 슈타이너의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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