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s

Chapter 44 - Chapter 44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다니엘이 긴장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루시가 분노를 가라앉히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리엔이 주문을 하겠다고 했을 때 허락한 것도 사실이고 따로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다니엘이 극찬하던 에클레어를 먹고 싶었던 루시 입장에서는 떨떠름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두 눈을 반개한 채 민트 칩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았다.

밝은 청록색을 과시하고 있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도무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만약 민트 칩 아이스크림이 맛이 없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망치는 것과 마찬가지.

그건 싫었던 루시가 민트 칩 아이스크림을 심오하게 살펴보고 있자 프리엔이 두 눈을 게슴츠레 좁힌다.

‘흐응. 표정이 안 좋으시네…….’

그 이유가 뭘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데이트를 방해받는 게 싫은 모양이겠지.’

다니엘과 단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타인이 끼어들어 기분이 안 좋은 것일 게 분명하였다.

실상은 프리엔이 멋대로 주문한 ‘민트 칩 아이스크림’ 때문이었지만, 프리엔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민트 칩 아이스크림은 맛있으니까.

프리엔이 생각하기에 민트 칩 아이스크림은 호불호가 없는 완벽한 디저트였다.

물론 가끔 민트를 혐오하는 부류가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연합군의 궤멸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 성자나 마찬가지인 다니엘 소령님께 여우짓을 하는 루시가 붙어 있는 꼴이 프리엔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시의 업무 처리 능력이야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다.

프리엔은 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인들이 여자 문제로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말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마련.

그러니 프리엔은 루시가 다니엘에게 꼬리를 치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정상적인 연애라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루시는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프리엔은 루시가 숨기고 있는 어둠이 무척이나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둠이 다니엘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기에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다니엘을 유혹하는 것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에클레어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반면, 루시는 그저 에클레어를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망설이던 루시는 다니엘에게 한 입 크기만 잘라달라고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시는 상관에게 그런 무례한 부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민트 칩 아이스크림으로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한 루시가 스푼을 들었다.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먹은 루시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달달하면서도 상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가는 게 맛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스푼을 입에서 뗀 루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맛있어…….”

그 말을 들은 프리엔은 조금 놀란 기색이 되었다가 곧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루시 소위님! 민트 좋아하셨어요?”

“응.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런 거라면 진작 말씀하시지! 제도에 제가 아는 가게가 몇 개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루시가 곤란해하는 얼굴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니엘을 돌아본다.

그래도 되겠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 같았기에 다니엘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제도로 돌아가면 본부에서 우리의 공을 인정해주고 휴식 시간을 넉넉히 줄 테니까.”

루시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걸 본 다니엘은 커피를 마신 후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디저트에 완전히 빠진 모양이군.’

연합국에는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든다.

디저트를 불량식품이라 폄하하던 루시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너희 유능한 첩보 요원의 미각을 NTR해버렸는데 지금 어떤 기분이실까?

‘사상은 불순해도 혀는 솔직한 법이지.’

만족하며 에클레어를 먹으려던 다니엘은 루시의 시선을 느끼며 멈칫하였다.

루시가 에클레어를 힐끔거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집무실에서 에클레어에 대한 찬사를 그렇게나 늘어놓았으니 맛이 궁금한 게 당연하다.

루시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던 다니엘이 나이프를 들어 에클레어를 반으로 자른 후 작은 접시에 담아 건네주었다.

그러자 루시가 조금 놀란 눈빛이 되어 다니엘을 바라본다.

“소령님. 이건 제 몫이 아닙니다.”

“지금부터는 네 몫이다. 나는 배가 불러서 말이지.”

“……감사합니다.”

공손히 접시를 받은 루시가 포크로 에클레어를 찍어서 한 입 베어물었다.

“……!”

동시에 루시의 동공이 확장된다.

민트 칩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보다 더 놀라고 만 것이다.

흠칫한 루시는 금새 원래 표정을 되찾았지만 얼굴이 상기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느꼈던 거지만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군…….’

루시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맹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던 다니엘이 에클레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었다.

‘오.’

과연. 루시의 반응이 이해가 될 정도로 에클레어는 맛있었다.

*

디저트를 다 먹고 나서 가게 밖으로 나온 루시는 다니엘과 프리엔을 먼저 보냈다.

따로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니엘과 프리엔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이 저 멀리 걸어가는 것을 확인한 루시는 가게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검은색 비니를 쓰고 있던 남자가 루시를 돌아본다.

“……뭡니까?”

“미행을 그렇게 티 나게 하면 들키기 마련입니다. 닷새 전에도 주변을 맴돌더니 오늘도 나타나셨군요.”

루시의 말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는 결코 땅 밑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남자의 손이 움찔 떨렸다.

저건 연합군 첩보부 내부에서 통하는 일종의 암호문이었기 때문이다.

루시가 첩보 요원이라는 걸 깨달은 남자가 마른 침을 삼킨다.

남자를 빤히 바라보던 루시가 조용히 말을 전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십시오.”

발길을 돌린 루시가 어딘가로 걸어간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남자는 거리를 두고 루시의 뒤를 쫓았다.

루시는 특정한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인적이 드물어지고 있었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초조해진 남자가 괜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훑어보며 걷던 남자는 텅 빈 공사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부들이 모두 퇴근한 건 물론이고 근처에는 시민들이 살지 않아서 인적이 전무한 곳이다.

왜 이런 곳까지 안내한 것인가 싶었던 남자가 분위기를 풀고자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 이런 곳에서 동지를 만날 줄은 몰랐네! 그것도 놈의 부관으로 위장하고 있을 줄이야. 오히려 잘 됐어. 다니엘 슈타이너를 암살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루시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연합국에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 대한 조사는 모두 마쳤습니다. 이전에도 독단적으로 활동한 사례가 있더군요.”

“……그래서? 내 독단적인 행보가 연합국에 해를 끼친 적이 있었나? 거기다 다니엘 슈타이너는 장차 연합국에 막대한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제거하는 게 옳아.”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그건 연합국에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남자가 이를 갈았다. 도통 말이 안 통하는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뭐 어쩌라고? 손 놓고 구경만 하라는 소리야? 아니면 다른 도움이라도 주시게?”

“틀렸습니다. 저는 당신을 제거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제거?”

같은 팀을 죽이겠다고? 무슨 헛소린가 싶었을 무렵에 루시가 몸을 돌렸다.

보름달의 역광을 받으며 서 있는 루시의 모습에서 왜인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진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연합국은 왕국의 패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다니엘 슈타이너를 암살하면 연합국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잠깐만…….”

“또한 제게 내려진 임무는 ‘배심했거나 명령을 듣지 않는 요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은 두 가지 사항 모두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을 볼 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헛웃음을 한 번 흘린 남자가 불현듯 품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루시가 무어라 입을 달싹이기도 전에 남자는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총성과 함께 섬광이 터지며 총알이 날아간다.

그러나 총알이 루시의 몸을 터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우웅─

루시가 형성한 푸른 장막에 총알이 박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았다고? 그 찰나의 시간에?’

남자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루시가 장막을 해체한다.

장막이 사라지자 허공에 멈춰 있던 총알이 아래로 떨어져 힘없이 뒹굴었다.

“죄송합니다. 악의는 없습니다.”

루시가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든다.

그걸 본 남자가 밀려오는 공포감 속에서 외쳤다.

“이 미친년이! 아무리 윗선의 명령이라도 지금 같은 요원을 살해하겠다고……!”

안타깝게도 남자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탕!

날아간 총알이 남자의 머리통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잠시 휘청이던 남자가 바닥에 털썩 쓰러진다.

“…….”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루시가 리볼버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달빛을 반사한 빛이 눈을 거슬리게 만들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금이 간 전신 거울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루시는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달빛을 받아 윤기를 머금고 있는 백은발의 머릿결에 붉은 눈동자.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시는 오늘 다니엘이 했던 말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다.

─ 그냥. 오늘따라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아서 바라보았다.

……그건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한 번도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 없는 루시에게 있어서 꽤나 난해한 칭찬이었다.

애초에 루시가 남자에게 듣는 말이라고는 비명이나 욕설밖에 없었다.

연합국에서 루시에게 내린 임무는 배반자를 처단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니엘의 말을 곱씹던 루시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수…….’

별들이 무성한 것을 보니 벌써 밤이 깊어지고 만 것 같았다.

내일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한다.

머릿속의 상념을 지운 루시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는 여태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 온갖 사람들을 죽였다.

붉은 눈의 사신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배반자들에게 있어 루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루시도 두려워하는 게 하나 있었다.

‘출근하기 싫어…….’

애석하게도, 그건 바로 출근이었다.

More Chap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