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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 - Chapter 43

루시에게 디저트 가게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령부를 나온 나는 지프 차량을 탄 채 멕캘 중위가 말했던 군수 공장으로 향했다.

30분 정도를 주행한 끝에 운전병이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서서히 감속하던 지프 차량은 무너진 군수 공장의 입구에서 완전히 정차하였다.

“도착했습니다. 사령관님.”

운전병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준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반파된 정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여 있는 순찰 인원들이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병사들과 멕캘 중위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경례를 올렸다.

“사령관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충 경례를 받아준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

“연구소는 어디에 있지?”

“아. 이쪽입니다.”

멕캘 중위가 바닥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리자 활짝 열린 철문 너머로 지하를 향해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고 있었다.

“지하 기지인가. 왕국놈들은 지하에 뭘 만드는 걸 더럽게도 좋아하는군.”

“그렇습니다. 연합국의 동맹이라 그런지 하는 짓이 쥐새끼를 꼭 빼닮았습니다.”

멕캘 중위의 농담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마른 웃음을 흘린다.

나 또한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멕캘 중위를 돌아보았다.

“농담이 늘었군. 그보다 수색은 어느 정도로 했지?”

“대충 상황 파악만 하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함정을 설치한 것 같지는 않으니 편히 둘러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사령관님과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나 혼자 간다. 너는 병사들과 함께 입구를 지키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나는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주변이 어두컴컴하게 가라앉았기에 미리 구비하고 있던 손전등을 꺼내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딸깍─

손전등에서 나온 빛이 전방을 밝게 비춘다.

계단 끝에는 철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멕캘 중위가 열어둔 것인지 개방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에폭시 코팅을 한 바닥이 펼쳐진다.

윤기가 날 정도로 말끔한 바닥 위에는 긴 책상들과 여러 실험 도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플라스크나 현미경 같은 것들 말이다.

몇몇 기구는 나도 어디에 쓰이는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이상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연구를 진행하면서 얻은 샘플 같은 것들은 모두 치워버린 것인지 여러 도구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먼지가 두둥실 떠다니는 실내를 관찰하던 나는 개방되어 있는 자동 개폐문을 발견하였다.

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넓은 복도가 펼쳐진다.

복도 양쪽에는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방처럼 나눠놓은 구간마다 침대와 식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마치 감옥 같은 구조였지만 사람은 없었다.

문이 모두 열려 있는 것을 보면 데리고 나간 모양이었다.

심호흡을 한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끝자락에 철문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 끝까지 걸어간 내가 철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당겼다.

끽─

열리다 말고 문이 멈춘다.

호흡을 가다듬은 내가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철문이 활짝 열리며 잿가루가 흩날린다.

‘……잿가루?’

의아했던 내가 안쪽을 살펴보자 바닥이 온통 재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뭔가를 태웠군. 그것도 대량으로.’

이곳에서 대량으로 태울만한 것이라면 아마 종이일 것이다.

연구소의 기록들이 적혀 있는 서류들 말이다.

‘하지만 조잡하다. 급히 도망친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여.’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연구를 하고 있었기에 지하 기지를 건설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철수할 때 실험 기구들이나 쇠창살 안의 식기나 침대를 제대로 처분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황급히 철수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미가 된다.

‘놈들도 하루아침에 제국군이 보급 경로를 타고 도시 내부로 진입할 줄 몰랐겠지.’

귀중한 연구 자료들을 불태운 것도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일 확률이 크다.

아마 불을 지르고 나서 서류들이 제대로 소각되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도망갔을 것이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나는 어렵지 않게 소각되지 않은 종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위나 아래쪽이 절반 정도는 불타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양이었다.

바닥에서 종이 몇 장을 주운 나는 겉면에 묻은 잿가루를 툭툭 털어내었다.

그러자 종이에 적힌 글자가 형태를 드러낸다.

『……최종적인 목표는 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최첨단 전투 병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마법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인간을 병기로 만들 수 있다면 제국의 야욕을 꺾는 것은 물론 왕국이 열강으로 거듭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불에 그을린 곳이 많아 다른 글자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대다수의 마법이 실전되었다고는 하나 실효성이 입증된 마법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마탄 부여와 일시적인 신체 강화 등은 대다수의 군인들이 사용할 수 있지만 광학 위장이나 중력장 형성 등의 특수한 기술들은 높은 재능을 요구로 한다.』

페이지를 넘겼다.

『……만약 재능을 인위적으로 형성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예로 제국 친위대와 같은 강함을 일반 병사들이 가질 수 있다면? 최초의 의문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마법 적성이 높은 신원불명의 지원자들에게 강화 물질을 주입하는 것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실패했다. 지원자들 전원이 비정상적 마법 반응을 보이며 구토, 설사, 복통, 착란, 환각, 자해를 일으켰다. 마법적인 향상 폭도 미미하여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이러한 고통을 겪은 이들이 충성을 맹세할지에 대해……』

페이지를 넘겼다.

『……최근 연합국이 건네준 자료에 의하면 실험에 성공한 개체가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하며 그 마법적인 향상성 또한 예상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다. 덕분에 우리 연구진들은 연합국에 경의를 표하며 향후 진행할 프로젝트의 코드를 해당 개체의 이름을 따서……』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내가 두 눈을 날카롭게 좁혔다.

“……루시 프로젝트로 명명한다.”

루시 프로젝트.

보고서의 말단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

보고서를 챙긴 나는 연구소에서 나와 멕캘 중위에게 해당 연구소가 발견된 것은 어디까지나 기밀이라고 입단속을 시켜두었다.

이후 생각을 정리할 겸 인근 지역을 순찰하던 나는 오후가 되어 루시와 만나기로 약속한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귀를 편안하게 해준다.

고딕풍으로 꾸며진 인테리어에 소소한 감탄을 느끼고 있으니 창가 테이블 쪽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소령님! 여기에요!”

고개를 돌리자 프리엔이었다.

왜인지 프리엔 옆에는 루시가 앉아있었다.

그게 의아했던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프리엔 생도? 네가 내 부관과 같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디저트를 먹으러 왔다가 우연히 루시 소위님을 발견해서요. 들어보니 소령님도 오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참! 메뉴는 제가 다 주문했으니 앉으시면 돼요.”

“메뉴를? 네가?”

“네. 루시 소위님한테 들어보니 소령님이 에클레어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을 절약하시라고 제가 미리 주문을 해놨어요.”

그런가. 나쁘지는 않았기에 수긍하며 프리엔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러며 루시를 한 번 바라보았다.

‘……실험체였다고? 루시가?’

게임에서도 루시의 과거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지금 처음 알았다.

거기다 루시와 같은 인간 병기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적국에 한 명 더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순수하게 재능이 뛰어날 뿐이니 예외였다.

그렇다는 건 놈들의 최첨단 병기 개발 프로젝트는 먼 미래에도 계속 실패만 한다는 소리였다.

‘그건 그렇고…….’

루시는 연합국의 실험체였으면서 어떻게 연합국에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또 있는 건가.

의문이 들어서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루시와 눈이 마주친다.

핏빛을 닮은 붉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조금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소령님? 하실 말씀이라도?”

변명할 말을 찾던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냥. 오늘따라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아서 바라보았다.”

예상 밖의 답변이었는지 루시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곧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감사합니다.”

잘 넘어갔다고 생각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프리엔의 시선이 느껴진다.

루시를 칭찬한 나를 마뜩잖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건가 싶었을 무렵에 종업원이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에클레어와 커피를 주문하신 분은 어느 쪽이시죠?”

“이쪽이다.”

내가 손을 들자 종업원이 미소를 짓고는 에클레어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다음으로 프리엔과 루시의 앞에 민트 칩 아이스크림을 놓아주었다.

그걸 본 루시가 잠시 멍하니 있더니 곧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저기, 잠시만요. 주문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종업원이 당황하는 사이에 프리엔이 끼어든다.

“제대로 시킨 거 맞아요. 돌아가셔도 돼요.”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프리엔 덕분에 종업원은 어색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종업원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프리엔이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루시 소위님이 메뉴 주문을 저한테 맡기셨잖아요? 따로 먹고 싶다고 하신 것도 없으시기에 제가 민트 칩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답니다.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한테 한 번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조금 너무하다 싶은 마음에 루시를 돌아봤다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

루시가 프리엔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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