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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 Chapter 42

노르디아에는 폭동이나 시위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넘어서 아주 평화로웠다.

집무실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니 시민 몇 명이 순찰을 도는 주둔병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보통 무서워해야 정상 아닌가?’

내가 임시 주둔지 사령관으로 임명된 지가 벌써 보름째였다.

그런데도 그 흔한 트러블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맥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창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내린 내가 손에 들려 있는 서류철을 살펴보았다.

오늘 아침에 루시가 내게 전해줬던 ‘주둔군 만족도 설문조사’였다.

《주둔군 만족도 설문조사 통계》

표집단 : 도시 각 구역 거리 시민 100명

응답자 수 : 약 5,700명

질문 : 주둔군의 도시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빈도 분석

1. 매우 잘하고 있다 – 2,365명(41.5%)

2. 잘하고 있다 – 1,254명(22%)

3. 모르겠다(지켜봐야 한다) – 684명(12%)

4. 실망스럽다 – 855명(15%)

5. 매우 실망스럽다 – 542명(9.5%)

※ 모든 설문은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둔병이 아닌 현지 조력자를 통해 진행되었음을 알림.

처음에 이걸 봤을 때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그도 그럴게 도시민의 과반인 63.5%가 주둔군을 지지하고 있다는 통계였으니까.

과격한 시위나 폭동이 일어날 리 없다는 지표이기도 하였다.

‘참모 본부에서는 이 보고를 듣고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통계를 앞두고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창가에서 몸을 돌린 내가 서류철을 집무 책상 위에 대충 던져버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반쯤 포기한 얼굴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내가 루시를 돌아보았다.

루시는 참모 본부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집무실 한 편에 마련된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일에 파묻혀서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니 내심 안심이 된다.

‘거기다…….’

특진하고 임시 사령관 자리에 앉은지 보름이나 지났는데도 암살 시도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연합국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하는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건 그나마 희소식이었다.

그래도 경계를 풀지 않으며 지켜보고 있으니 루시가 서류 작업을 끝내고는 짧게 기지개를 폈다.

양팔을 들고 ‘끄으응’ 신음을 흘린 루시가 한숨과 함께 팔을 내려놓는다.

졸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루시는 문득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내가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 루시가 붉은 눈을 두어번 깜빡인다.

“……소령님? 하실 말씀이라도?”

뭐라고 둘러댈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내가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는 다 끝냈나?”

“예. 오후에 처리할 서류가 남기는 했습니다만 처리할 양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일과가 끝나면 푹 쉬면 되겠어. 요즘 나를 돕는다고 고생하지 않았나.”

“고생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소령님과 달리 저는 주로 현장을 돌아다녔으니까요.”

부정하지는 않는구나.

“그보다 소령님도 오늘은 휴식 시간을 가지실 수 있겠습니다.”

“아아. 그래. 안 그래도 오늘 노르디아에 유명한 디저트 가게를 가려고 했는데…….”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나를 바라보는 루시의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루시는 제도에서 파르페를 엄청 맛있게 먹었었지.

저거, 아무래도 내가 같이 가자고 권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눈빛이다.

짧은 침묵 끝에 내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괜찮다면 같이 가겠나?”

“디저트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만, 소령님이 권한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하? 이것 봐라?

파르페를 그렇게 맛있게 먹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한 쪽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나 혼자 가도록 하지. 부관의 휴식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루시의 손끝이 움찔 떨린다.

표정은 여전히 무감했으나 행동에서 실망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권할 생각은 없었다.

시치미를 떼는 것은 디저트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내 부관이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고민을 하는 것인지 루시의 눈동자가 살며시 떨린다.

하지만 루시는 결국 자존심을 선택하며 남몰래 주먹을 꾹 쥐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괜히 오기가 생긴 내가 거드름을 피웠다.

“이번에 내가 먹을 디저트는 에클레어다. 슈 페이스트리 반죽이라고 들어봤나? 물, 버터, 밀가루, 달걀 등을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데 오븐에 구울 때 가볍게 부풀어오르는 게 특징이지.”

“…….”

“이건 오븐에 구운 순간부터 이미 맛있다.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감도니까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단순한 빵이지 디저트가 아니야.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루시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슈 페이스트리 반죽이 다 구워지면 그 안에 바닐라 크림을 가득 짜 넣는다. 그 위에 걸쭉해진 초콜릿 글레이즈를 얹을 거다. 맛이 상상이 가는가?”

루시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반응에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환상적이겠지! 부드러움 크림과 고소한 반죽의 맛이 조화롭게 어깨동무를 하며 입 안을 뛰어놀 게 분명하니까! 거기다 초콜릿까지? 먹는 순간 무신론자도 신을 찬양하게 된다.”

“…….”

“물론 내가 백날 설명해도 맛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거다. 그래도 네게 강요할 수는 없겠지. 넌 어디까지나 ‘디저트를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내가 마지막으로 떠보자 루시가 알게 모르게 입술을 꿈틀거린다.

패배 선언인가 싶어서 조용히 지켜보던 순간이었다.

따르릉─

집무실의 전화기 소리가 나와 루시 사이에 끼어든다.

누군가 싶었던 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주둔지 임시 사령관이다.”

곧 수화기 건너편에서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령관님! 멕캘 중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무너진 군수 공장을 순찰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에 보고차 이리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상한 점? 궁금했던 내가 되물었다.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라.”

─ 알겠습니다! 군수 공장 지면 아래에 놈들이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 지하 기지를 발견했습니다. 연구소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구조가 이게…… 직접 보셔야 이해가 빠르실 것 같습니다.

적이 연구소를 숨겨놓았다고?

이유가 뭐지? 의아했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도록 하겠다. 수색을 멈추고 입구에서 대기해라.”

알겠다는 답변을 들은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시는 입을 다문 채 업무를 보는 척을 하고 있었다.

패배 선언을 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안 가는 걸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런 루시를 지긋이 바라보던 내가 걸음을 옮겼다.

“맛있겠군. 장인이 만드는 에클레어라던데…….”

루시가 이를 꾹 깨무는 게 보인다.

나는 반응을 즐기며 문밖으로 나갔다가, 삼 초 정도를 세고 나서 다시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서 루시 앞에 섰다.

“마지막 기회다. 정말 디저트 가게에 안 갈 건가?”

루시는 심적인 고민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곧 두 눈을 반개하더니 시선을 내렸다.

“……싶습니다.”

“뭐라는 거지. 제대로 말해라.”

짧은 심호흡 끝에 루시가 입술을 달싹였다.

“가고 싶습니다…….”

그제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본심을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위치를 말해줄 테니 일과가 끝나면 같이 가도록 하지.”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루시의 얼굴은 미약하게 붉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말도록 하자.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

제국 참모 본부.

작전참모차장의 집무실.

똑똑─

노크 소리에 세드릭 벤델이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게.”

곧 문이 열리더니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들어온다.

작전참모부장인 대령 에른스트 바르크였다.

에른스트는 방의 중앙까지 걸음을 옮기고는 경례를 올렸다.

본래 상관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에른스트라 경례는 대부분 생략하지만, 작전참모차장 앞에서는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저 까마귀를 닮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전신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참모차장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그대가 내 집무실에 오는 건 오랜만이군. 무슨 일이지?”

“아.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에 관한 일로 찾아뵈었습니다.”

다니엘 슈타이너라. 북부에서 맹활약을 떨치고 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아는 바였다.

다니엘을 임시 주둔지 사령관 자리에 넣은 것도 바로 세드릭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막 소령이 된 인재에게 주둔지 사령관 자리를 맡기는 건 실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 점령하는 것보다 지배하는 것이 힘든 법.’

그러니 에른스트 또한 노르디아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를 보고하러 온 것이리라.

“노르디아에 일이 생긴 건가? 이를테면 민중 봉기나 폭력 사태 말이다.”

“……아닙니다. 전보를 통해 듣기로 노르디아 시민들 대다수가 주둔군의 도시 계획에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첩보에 따르면 시민들 사이에서 점령당하기 전보다 더 살기 좋아졌다는 말이 오갈 정도입니다.”

세드릭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에른스트가 알기로 세드릭이 저렇게 놀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민생을…… 장악했다고?”

그것도 임시 주둔지 사령관 자리를 맡긴 지 보름만에?

어이가 없을 정도의 쾌거에 잠시 가만히 있던 세드릭은 곧 마른 웃음을 흘렸다.

“이런. 내가 다니엘 슈타이너라는 인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고 해도 전장에서 구르기 시작하면 그 피로감에 지치고 만다.

다니엘 슈타이너 또한 비슷한 고초를 겪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걸 보면 피곤하기는커녕 몸이 달아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전선이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처럼 뛰어놀고 있지 않나.’

마음속으로 다니엘 슈타이너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높인 세드릭이 말했다.

“주둔지 사령관을 빠르게 선발하여 노르디아에 보내야겠군.”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에른스트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참모차장님? 급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니엘 슈타이너 소령이 점령지를 수월하게 제국의 영토로 물들이고 있습니다만…….”

“그대는 하나만 보고 둘은 볼 줄 모르는군. 다니엘 슈타이너가 겨우 주둔지 사령관 자리에 만족할 것 같나.”

세드릭의 공허한 두 눈동자가 차가운 기운을 머금었다.

“놈은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 제국에 헌신할 수 있는 중대한 임무가 자신에게 내려지기를 말이야. 그러니…….”

식은땀을 흘리는 에른스트를 바라보던 세드릭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린다.

“나는 그 녀석의 소원을 이뤄줄 생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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